매장을 접은지 한 달, 이제 노는것도 슬슬 지겹고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점을 먹고 슬슬 노트북을 켰다. 유튜브를 보다가 슬쩍 알바몬을 들어갔다. 심심한데 알바나 해볼까? 카페말고, 서비스직 말고 되도록이면 혼자 콕 처박혀서 할 수 있는거면 더 좋고 단순노동이면 더 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사람이랑 부딪히면서 하는거 말고 조용한 일로 찾아봐야지.
예전엔 무엇이든 되고싶었다. 아니, 반드시 뭐가 되어야만 했다.
성취욕구가 크고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다. 결국 나의 에너지는 성취욕구를 따라가지 못했다. 점점 나는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나와, 현실의 내가 자꾸만 싸웠고 크게 고통스러웠다. 나를 부정하는 시간들이 얇게 쌓여 바스락, 부서지며 눈감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곤 자책하는 시간들과 구멍난 완벽주의가 나의 목을 서서히 졸라왔다. 자려고 누웠는데 윗집에서 쿵쿵 거린다. '윗집 왜이렇게 시끄럽지?소리 들려?', '아니 아무 소리 안들리는데.'. 그건 내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종종 숨을 쉴 수 없었고 눈 앞이 캄캄해지고 사물 인식 감각도 떨어졌다.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 잡혀 자주 조퇴를 했다. 공황장애였다.
최태성 선생님이 어느날 "꿈은 명사로 꾸지 말고 동사로 꾸세요."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너무 어린시절 장래희망 칸에 한 단어로 꿈을 박제하곤 한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장래희망칸에 무얼 쓰면 좋을지 곰곰히 생각하던 어린 유정에게 말해주고 싶다. "대충 써." "그리고 너무 크게 걱정하지 말고 살자."
대충. 적당히. 라는 말을 싫어했다. 할 수 있는 일은 120%까지 에너지를 끌어다 썼고 결국 소진되어 버렸다.하루 쉬면 충전이 되어야 하는데 완충되지 않는 오래된 밧데리가 된 기분이었다. 결국 내 정신은 파업을 선고했고 내 몸도 더이상 못해먹겠다며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상담 시간은 즐겁기도, 슬프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티슈 반 통을 눈물로 적셨다. 어떤 날은 예약시간 4시간 전부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넘치는 에너지가 나를 활동하게 했다. 아, 이게 조울증이구나. 여기요! 조울증 하나 추가요! 알고는 있었지만 나 정말 예민한 사람이네. 특히 선생님은 극에 서있는 나에게 다른 방향을 제시해 주셨는데, 보시기엔 [나=여름과 겨울, 빨강과 파랑, 뜨겁고 차가운것, 바다와 사막]으로 극단적인 사고를 한다고 하셨다. 옹달샘과 봄, 가을과 해변의 모래사장과 예쁜 하늘을 알려주신거다. (참, 사막과 해변의 모래사장은 한 끗차이인데 이렇게 다르구나!) 그리고 꼭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 할 수 있다고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이 나에게 평화를 줄거라고 얘기해주셨다. 그 무렵 나는 살이 오동통하게 올랐는데 아마도 마음의 평화가, 낮아진 민감도가 나를 푸근하게 만든게 아닌가 싶다.
남편의 끝없는 지지와 사랑, 가족과 지인들의 애정어린 관심 덕분에 나는 지금도 웃으며 잔잔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꼭 타오르듯 붉게 물들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안아주자, 나를 다독여주자. 사실 머리로는 완벽히 이해했지만 또 본성은 자주 불쑥 존재감을 내비치는 터라 불안과 강박이 내 곁으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침 유튜브에서는 연사가 이런말을 한다.
"꽃을 피우지 않아도, 열매 맺지 않아도 나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