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명사가 되고 있지 않는가?
꿈이 명사가 되면, 그 꿈이 이뤄진 이후의 삶이 허무해진다는 말을 듣고 생뚱맞다고 생각했었다.
꿈이란 자고로 ‘대통령’, ‘과학자’ 이렇게 명사형으로 되고 싶은 직업, 사람이 되는 것이라 배워왔으니 꿈이 동사형이 되어도 되는지조차 생소했다. 그럼 어떻게 동사형으로 꿈을 꾸란 말인가?
대통령이 되도록 정치력을 익히자?, 아니면 과학자가 되도록 열심히 과학적 지식을 쌓자? 이게 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직함에 머물지 말고,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과학자라는 직함보다는 ‘지구가 더 더워지지 않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학자가 되겠다.’라고 한다면 처음 기후대응 박사 학위를 받은 날 꿈을 이룬 게 아니라 지구가 더 더워지지 않는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실현할 때마다 꿈은 이루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니 꿈을 이루고, 다시 꿈꾸고를 반복하는 게 아닐까? 나는 꿈을 동사형으로 꾸라는 말을 그렇게 읽었다.
지금 나의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은 나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초등학교 5학년 신학기를 시작하는 날 저의 꿈은 ‘과학자’입니다 라고 했을 때처럼 단순하지 않다. 살아보니 직장에서의 내가, 남편의 아내로서의 나, 우리 어머니의 딸로 존재하는 내가 다른 모습이다. 또 아이의 엄마로, 후배들의 선배로 실존하는 나는 한 명이지만 역할로써 나를 쪼개면 100가지도 넘을 역할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역할마다 꿈이 존재한다. 즉 지금 나의 꿈, 즉 하고 싶고, 해내고 싶은 일이 백 가지쯤 된다는 말이다.
직장에서 32년 6개월 차다. 많은 동년배가 승진했고, 또 더 많은 친구는 나와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으니,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을 만나면 승진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덩달아 맘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도 이젠 승진이라는 출입문 앞에 서 있으니 곧 그 문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나의 희망을 확신이라 믿으며 지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이번엔 승진하고 싶다는 맘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맘을 먹고 살고 있으니, 이미 승진한 이를 만나면 ‘저런 것들도 승진해 있는데….’하는 맘이 들면서 내 신세도 우습지만 그들을 대하는 내 태도는 더 우스운 꼴이 되어갔다. 그런 맘으로 나를 볶아 댔으니 얼마나 피폐해졌겠는가?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승진 못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은 나를 대할 때 조금 있어야 하지 않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얄밉게 객관적이다. 그리고 내가 같잖게 보고 있는 승진해 있는 많은 동년배의 상급자들은 그들 나름의 이유와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 데 참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던 중 ‘똑똑한 사람이 승진하는 게 아니라, 승진한 사람이 똑똑한 거더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는 다 그런 건 아니야 싶은 맘이 많았지만, 이젠 그 말에 동의하기로 한다. 내가 그렇게나 똑똑하지 않고 딱히 올해 안에 반드시 승진해야 만 할 만큼도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승진 따윈 필요 없어 하면서 워라벨을 즐기려는 것은 아니다. 내 위치에서 형편 닿는 만큼 내 역할을 해 낼 것이고, 양보한다는 의미는 더욱 아니고, 포기도 아니다. 그냥 나를 좀 덜 볶아대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게도 그 차례라는 것이 오지 않을까? 그런 위안을 한다.
내 마음을 바꿔 먹으면서 승진에서 낙방하더라도 어쩔 수는 없지만 내가 된다면 어떤 상사가 되고 싶은지를 한번 생각해 봤다. 단지 한 직급을 더 올라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우리 팀이 아닌 건너편에 있는 내 후배들에게도 내 영향력이 닿을 수 있어서, 지금 힘들어하는 후배들의 짐을 들어줄 책임지는 상사가 되기 위해서 승진을 하고 싶다는 쪽으로 나의 꿈을 이동시켜 본다. 그럼, 지금 당장 느끼는 이 허무가 조금은 욕심으로만 보이지 않으려나…. 그냥 그렇다고 넋두리처럼 가을밤에 주절거려 본다.
언젠가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