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기준의 내맘대로 최애들
올해는 달리면서 오디오북 혹은 리디북스의 수진씨/민준씨 목소리 3.4배속으로 들은 책들이 많아서 연초에 세운 한주에 한권 읽기 (총 52권)은 일찌감치 달성했다. 달리기에 적합한 책들만 골라서 읽다 보니 장거리를 달리면서 빠져들어 묘사를 들을 수 있는 소설에 집중 되어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처음으로 3.5마일을 달리던 Lake Merced 호숫가에서 <플랫폼 레볼루션> 따위를 듣으며 뛰느라 뛰는 것이 배로 힘들었던 경험 이후로 뛸 때는 재미있는 책을 듣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많이 읽었던 중에 올해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내맘대로 순전히 내 취향대로 추려보았다.
1. Radical Candor
올해는 비지니스 관련 책을 읽는 북클럽 덕에 매달 한 권씩은 읽었는데 그 중에서 발군이 이 책과 요 다음에 쓸 Measure What Matters였다. 북클럽의 첫번째 책이었는데 정말 모두가 다 할말이 너무 많아서 본래 1시간 잡아놓은 온라인 북클럽 미팅을 거의 3시간을 했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도 응용할 거리도 많았던 책.
2. Measure What Matters + OKR
존 도어의 책을 먼저 보고 크리스티나 워드케 것도 내친 김에 같이 읽었다. 존 도어 책이 좀더 교과서적이라면 크리스티나 워드케 것은 응용 워크북. 두 책을 읽어보고 나도 개인적/업무적으로 OKR을 쓰기 시작했다. 매년 계획은 너무 잘 세우는데 그 계획을 지키는 것에는 좀 약하던 게 나의 약점이었다면 올해는 그걸 보완할 툴들을 몇개나 손에 넣은 것 같다.
3. 파운데이션
모 친구의 스타트업이 본래 이름을 해리 쉘던이라고 지을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꽂혀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 유명한 시리즈를 이제서야 읽다니 하면서 게걸스럽게 7편을 다 읽었다. 특히 여름의 부산에서 수영에서 해운대를 갔다가 광안리까지 10마일을 뛰면서 리디북스로 들으면서 뛴 것이 기억에 남는다. SF라면 이 정도 스케일은 되어야지 싶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명작.
4.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달리면서 들으면 좋은 책들을 고르게 되었는데, 이야기가 한치 앞을 알 수 없이 빠져들게 재미있거나 묘사가 아름다워서 그걸 떠올리면서 달리기 좋거나 한 책들이 주가 되었다. 특히 일본 소설들이 묘사가 좋은 것들이 있어서 한동안은 달리면서 일본소설들을 리디북스로 들었다. 그 중에서도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여행중 싱가포르 마리나에서 따뜻한 열대의 비를 맞으면서 10km 거리를 처음으로 뛰면서 들은 책인데, 일본 시골로 여름 겨울 리트릿을 가는 건축회사 직원들의 이야기와 잔잔한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운 묘사로 그려져서, 그날의 달리기 경험을 잊을 수 없게 해줬다. 내가 싱가포르를 다시 뛴다면 그때 들었던 책속의 묘사가 길 코너코너에서 떠오르리라. 나중에서야 이 책의 저자인 마쓰이에 마사시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편집자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아 역시 나의 취향은 변하지를 않는구나 하고 한탄.
5. 종이호랑이
켄 리우의 종이호랑이는 내가 애정하는 테드 챵의 단편선들에 비할만 했다. 중국풍 동양 느낌이되 미래적인 SF라니 테드 챵이랑은 또 결이 달랐지만. 근데 켄 리우가 류츠신의 <삼체>를 영어 번역한 사람이라니 쯘드마?? 내가 요새 애정하는 중국계 SF 작가 3명이 테드 챵, 켄 리우, 류츠신인데 셋 다 (놀랍게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내가 마소 다닐땐 왜 몰랐을까 ㅋ
6. 삼체
삼체를 읽기 시작한지는 한참 되었으나 3권이 한글 번역이 안되어서 영어로 읽다가 아스트랄해지는 바람에 중간에 개점휴업을 하고 있다가 올해 한글 번역이 되어서 한글로 갈아타니 후루룩 읽혔다. (모국어의 힘이란!) 이런 스토리와 비유를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류츠신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한다!
7. 더 퍼거토리
순전히 재미로 리디북스의 판타지 장르 1위의 시리즈를 읽기 시작한 건데, 어차피 창작으로 쓸 대체역사물이라면 이 정도 스케일은 나와야지 싶었다. 18권짜리 시리즈에서 인공지능의 개입으로 고려말 원나라 말기로 떨어진 주인공이 인공지능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게임처럼 능력치를 올려가면서 고려왕좌를 시작으로 원나라 대칸의 자리를 넘어 세계 역사를 다시쓰는 이야기인데, 판타지지만 역사 자료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고 글을 썼구나 하고 매순간 감탄했다. 나는 마법으로 고대에 떨어져도 고대 역사 배운게 기억나는 게 없어서 망할 것 같더라고. 엄청 재미있다. 고려/원나라 역사 + 게이미피케이션 + 인공지능물.
8.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애정하는 에세이스트 김하나의 책이 나왔다기에 냉큼 읽었다. 이건 모모님네 돌잔치 때문에 머나먼 산호세까지 운전해 가면서 차에서 들었는데, 비혼으로 친구들과 가까이 살면서 서로 의지하는 삶에 대해서 환상을 품게 되었지 뭔가. 특히 한국에서, 같은 아파트에, 가까운 친구들이 같이 살면 너무 좋을 거 같다. 아우 부러워.
9. 마티네의 끝에서
이것도 묘사와 스토리가 잔잔하게 아름다운 일본 소설이다. 역시 뛰면서 들었는데 젊은 시절 <일식> 같은 뾰죽한 걸 썼던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도 통속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나의 첫번째 4마일 런을 함께 한 소설.
10. 별의 계승자
SF평론가로 올해 정식으로 데뷔한 친구 이유미가 SF를 사고 실험의 사이언스로 정의했는데, 그런 면에서 별의 계승자가 참으로 재미있는 샘플이었다. 넘나 아스트랄한데 이런 아스트랄한 일이 생기면 인류 전체적으로는 이런 반응이 나오겠지 하는 걸 소설로 적은 거랄까. 심지어 내용은 아스트랄한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야. 올해의 SF소설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