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6개월 차 아빠 이야기
내 철봉운동과 관련해 친한 동생과 주고받는 농담이 있다. 형은 턱걸이를 20년 했는데 왜 몸이 그렇냐는 웃픈 이야기. 요새는 나도 “별 변화가 없는데 20년을 한 게 대단한 거 아니냐”며 자조적으로 받곤 한다.
철봉운동의 결과 중 하나는 이곳저곳 잘 오르고 넘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10대 때 학교 내외에서나 그럴 수 있었지 스무 살이 넘으니 영 쓸모없는 능력이 되었지만. 그래도 한 번 습관이 된 턱걸이는 꾸준히 이어졌는데 오죽하면 고등학생 때 한 학년 아래 얼굴도 모르는 동생들이 나를 철봉돌이라고 불렀다고 할 정도였다.
철봉운동 15년 차쯤 되니 그게 하나의 지표가 되기도 했다. 가령, 꾸준히 턱걸이를 잘하고 있는 시기에는 생활 전반에 건강하고 균형 잡힌 흐름이 생겨있음을 느낀다. 반면 철봉과 멀어져 드문 드문 매달리는 시기에는 생활이나 하는 일 전반에 리듬이 깨져 있는 식이다. 그걸 안 뒤로는 생활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도구로써 인식하고 다시 철봉에 매달릴 때도 있다.
그만큼 내 일상 속에 녹아있는 철봉. 학창 시절, 군복무, 고시 공부를 할 때도 철봉은 항상 내 곁에 있었고 만약 없으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글머리에 적었듯 내 몸에 나타난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몸을 다부지게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턱걸이 개수가 늘거나 철봉 위에서 할 수 있는 동작이 늘어가는 것에 재미를 느꼈기에 지속했던 것이라 아쉬움은 없었다. 그냥 책 읽고 영화 보듯 적당히 지속하는 취미에 가까웠다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 꾸준한 철봉운동이 가져다준 뜻밖의 실용성을, 내 철봉운동의 진짜 이유를 찾은 느낌이다.
너를 안으려고. 아가 네 무게를 충분히, 오랜 시간 견디고도 끄떡없는 몸이 되기 위해 그간 매달려온 게 아닌가 싶다. 아이가 아플 때 한정 없이 오랫동안 안아 달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팔과 복부의 근육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서 철봉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안고 달랬겠지만, 체력적으로 힘듦을 덜 느끼고, 때론 지친 엄마 대신 얼마든지 안아줄 수 있음에 다행이라는 마음까지 드는 데는 분명 턱걸이로 얻은 근육들이 일조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턱걸이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비록 입이 떡 벌어지는 갈라진 근육을 주진 않았지만, 건강한 삶의 지표가 되어주고 사랑하는 아이를 마음껏 안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고서도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니 30년 40년 후에는 무엇을 느끼게 될지 궁금하다. 다시, 꾸준히 매달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