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난히 긴 하루였다. 엄마가 당직근무인 날이라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근무기도 했고, 코로나로 시간제 보육도 가지 않으니 종일 붙어있었거든. 게다가 아직 컨디션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넌, 계속 안겨있으려 하더구나. 잠 - 안기기 - (잠시) 책 보기 - (잠시) 걷기 - 안기기 - 안겨 밥 먹기 - 잠- 안기기 - … 이런 일과를 보내다 보니 오늘은 좀 지친 게 사실이다. 밖에 나와 맥주 한 잔 하며 일기를 쓰는 중이다.
엄마는 계속 힘들었겠다, 정말 고생 많았겠다 말해주곤 한다. 무척 고마운 것과 별개로 ‘진짜 그렇게 힘들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이유를 알 수 없이 칭얼대는 (이제 땡깡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순간엔 짜증이랄지 화랄지 무언가 차오르는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금세 안쓰러움으로 변하고 만다.‘엄마’에 대한 갈구. 어떤 몸과 마음의 불편을 느끼고 있으나 표현도 어렵고, 그걸 해소하거나 다스리기엔 아직 너무 어리고 미숙한 존재라는 사실이 연미 혹은 이해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몇 시간의 고생을 잊게 하는 순간들의 존재가 육아를 지속가능케 한다. 활짝 웃는 모습이, 작은 입술을 모아 내는 “압-빠” 소리가, 품에 안겨 머릴 기댄 때의 느낌이, 진즉 바닥났을 법한 체력을 다시 채우곤 한다. 세 살까지의 사랑스러운 모습들로 평생 효도를 다 한 셈이라거나, 그 기억으로 이후 힘든 시간을 버티고 키워내게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네가 무척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장염에 이어 코로나로 고생하던 시간도 끝을 앞둔듯하다. 아프면서 큰다는 말이 실감 난다. 며칠 새 2-3 센티는 큰듯한 우리 아가. 선선한 가을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곳곳을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