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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노니 Oct 13. 2024

‘노력의 배신’을 읽고

소제목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를 보고 뽑아들었다. 제목처럼 노력의 수 많은 배신 사례를 다룬다. 노력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들을. 나 역시 5년 가까이 노력한 시험을 결국 불합격으로 끝낸 경험이 있어서인지 단숨에 읽혔다. 십 수 년 전 수능의 경험이나 그밖에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모든 재능 대 노력의 경험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핵심은 간단하다. 성공은 재능, 환경, 노력의 산물이니 결코 노력만으로 모든 게 이뤄질것 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 단순히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고 얘기한다. 연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책이고 여러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주장을 펼친다. 본인의 경험에도 기반하고 있고. 그렇다고 노력해도 안 되니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고, 노력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을 찾을 것, 특정 분야(가령 공부)로 줄 세우는 사회나 성공한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문화 및 인식이 바뀌어야함을 얘기하는 책이다. 요약보다는 내 경험에 기반한 얘길 하고 싶다.

나는 내 시험 불합격의 원인이 복합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아, 참고로 시험은 행정고시(5급공채)다. 큰 축은 노력 부족과 재능 부족이었다고 본다. 노력신봉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대부분 노력 부족을 탓하며, 재능 부족은 스스로가 비참해지므로 전자를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지만 난 별다른 비참함은 느끼지 못했다.

노력 부족 측면에서는, 시간투입이나 다른 공부 방법의 시도 등 노력할 여지도 있었고 스스로 그걸 안다는 점에서 분명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서 얘기하듯 충분한 노력의 한도가 어디인지, 나의 노력이 합격한 이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지에 대해 의문은 든다. 실패자의 변명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재능 부족 측면을 말하자면, 사실 이 부분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은데, ‘재능이 탁월한 편은 아니었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일 것 같다. 지금은 7급 시험에도 도입된 PSAT라는 시험 과목이 있다. 5급 공채 1차 시험으로 거의 10년 전쯤 도입된 것으로 아는데 공직적격성평가라는 뜻이다. 공직에 적성이 맞냐를 보겠다는 시험으로, 암기된 지식을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다. 글의 정보, 표나 도표의 수치 자료 등을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지를 본다. 자료해석 과목을 빼고는 수능 비문학 및 논리 퀴즈에 가깝다. 노력으로 점수를 올릴 수 없는 시험은 아니지만 자기 한계치를 넘겨 합격선에 이르기가 쉽지 않으며 한계치가 처음부터 높은 수험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시간투입 없이 금방 합격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같이 공부하던 수험생들끼리도 이 시험 방식이 정당한지에 대해 얘기나눈 적이 있다. 누군가는 노력한다고 합격 가능한 시험이 아니라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으나 나는 예전 인사혁신처의 답변에 공감이 갔다. 노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 아닌 공직에 적합한지 여부를 보는 시험이라는 답변이었다. (이런 맥락이었다) 웃긴 건, 내가 이 시험에 그다지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방식 자체가 매우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일차 시험에서 두 번의 합격과 세 번의 불합격을 거쳐 최종적으로 그만두긴 했지만 이 과정은 재능과 노력의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가까이서 본 사례가 많았다. 이해하기 쉽게 시간으로 비교해보자면, 1-2주 준비해서 1차 시험에 붙는 사람과 2-3달 준비해서 (연간 내내 매일 꾸준히 준비하는 시간은 별도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었다. 지독한 재능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다. 1-2주 해서 붙는 사람은, 이 시험 전에 쌓아 놓은 노력의 시간이 있던 것 아닐까? 별로 수긍가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들 공부에서 남들 못지않게 노력해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었고 비교적 쉽게 붙는 사람이 평소에도 매우 학구적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조금 씁쓸하기는 해도 머리 차이, 즉 똑똑함(특히 단시간 내 집중적으로 빠르게 사고하는 능력)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합격과 불합격을 왔다갔다 했던 내 경우는 중간 어드메에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약간의 운이 따라주면 합격할 정도의 수준. 매 1차 시험을 준비할 때 적잖은 준비를 했었다. 두 번의 불합격 이후 세 번째 응시에서 합격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앞의 두 번 보다 열심히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결국 운이 좋았다.

1차 시험을 위한 준비 과정에서 스터디 모임을 하면서 ‘머리’의 실체를 조금 확인하기도 했다. 각자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사고 과정이나 풀이 노하우를 공유하는데, 똑똑한 스터디원의 경우 문제에 대한 이해나 접근방식에서 아예 다른 차원으로 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가 있었다. 그런 방식을 듣고, 이해하는 수준에서도 차이가 있어서 누군가는 바로 알아듣는가 하면 나를 비롯해 몇 번 설명해줘도 끙끙 머리를 싸매는 스터디원도 있었다. 올림픽 출전 선수의 달리기를 보고 경이로워할뿐 나도 저 선수처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공부에도 그런 영역이 분명 있었다.

돌이켜보니 15년 전 고3 시절에도 느낀 바가 있다. 하루 종일, 아니 학기 내내 사회과학 서적만 읽던 친구가 6월인지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언어 수리 외국어 모두 1등급을 받았다. 주변 친구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엄청났던 걸로 기억한다. 기숙사 학교였기에 그 친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와닿게 느꼈던 것 같다. 공부머리가 좋다는 게 뭔지. 하루종일, 비교불가할 만큼 공부에 시간을 쏟아도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모두 절친했기에 더 씁쓸했다.

나도 어느 정도 공부로 줄 세우는 사회에서 혜택을 본 케이스다. 수학에 재능이 없어 고생은 했지만 언어 쪽으로는 감각이 좋았다. 외국어야 일찍부터 과외(환경)를 받았다고 해도 국어(재능)는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1등급을 쉽게 받았다. 그러다보니 수학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노력) 늘 3-4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곳에 입학한 것도 운이 좋았다는 걸 잘 안다. 겸손이 아니라 실제가 그렇다. 수능에서 운 좋게 찍은 게 많이 맞아 수학 2등급을 맞았다. 사실 2등급으로 올 수 없는 학교지만 제도의 혜택(환경)으로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입학 초기에 자격지심을 가졌고, 해소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놀다 대학에 왔다고 할 수 없을 만큼은 노력했다. 상대적으로 일반고에서 진학한 학생들보다 노력이 적었을거라는 것,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친구들 중에서도 더 노력했지만 시험 결과가 좋지는 않은 친구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다 아는 얘기 아닐까. 어떤 영역에서는 남보다 덜 노력하지만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가 쉽게 얻어지고, 다른 영역에서는 반대의 결과로 고배를 마시기도 하지 않나. 다만 책에서 얘기하듯 특정 영역(특히 공부)에서 노력의 영향력이 과대 평가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가난한 사람, 학교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 등 ‘노력하지 않는‘ 이라는 수식어 하에 많은 이들이 매도되는 것을 종종 봐왔다. 책에서 얘기하듯 모든 것이 노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노력과 재능, 사회적 환경 등이 복잡하게 맞물려 어떤 결과가 만들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으로 일군 성취를 얘기하고, 나 역시 노력의 힘을 믿지만 ’어느 정도‘까지다. 모든 요인 앞에 노력이 대두되는 노력신봉사회는 썩 달갑지 않다. 달갑지 않을 뿐 아니라 저자의 말을 빌리면 ’사실이 아니다‘. 실패한 사람도 노력한 사람일 수 있으며, 때론 더 노력한 사람보다 덜 노력한 사람이 성공하기도 한다는 게 진실이라 믿는다. 아마 저자의 주장과 내 경험에 대해서도 많은 반박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내용에 많이 공감할 수 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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