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렴
고등학생 쯤되면 늘 옳을 것 같았던 엄마와 선생님의 이야기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엄청난 어른 같았던 저 사람들도 별 거 없잖아?' 하며 현타 오는 순간이 다가온다.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땐 아이들한테 '이래라저래라'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처음 교사가 되었던 때가 스물다섯 살이었으니까, 나도 어렸었는데 무슨 충고를 그렇게나 하려고 했던지 지금도 이불 킥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그중에도 가장 후회되는 말이 있다. 처음 내가 발령받았던 학교는 비평준화 지방의 전문계고 고등학교로 인근의 모든 고등학교 입시에서 떨어진 친구들이 모이는 학교였다. 교사의 부푼 꿈을 안고 처음 내디뎠던 한 발이 정말 가혹하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복도는 담배 냄새와 연기로 자욱했고, 하루 종일 출퇴근하시는 학생들이 많으셨다. 심지어 점심 드시러 등교하셨다 드시고 바로 하교하시는 학생도 있었다. 자퇴와 재입학을 반복해서 스물다섯 살 때 스물한 살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고3 교실에 알파벳을 모르는 학생들도 많았다. 알파벳과 파닉스부터 가르치면 기분 나빠하다가 나와서 'world 한 번 써보세요.'하고 말하면 못 들은척하던 그런 친구들이었다. 하도 수업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해서 잔소리를 한다는 게 '최소한의 공부는 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몰라서 억울한 경우들이 생기니, 기초 공부는 좀 해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 10년 차 교사쯤 되었을 때, 그때로 다시 돌아가 그 말을 삭제하고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이들한테 그렇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공부를 못해도, 가진 것이 없어도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라고 다시 가르치고 싶다. 아니, 다시 가르치지 못하더라도 그때로 돌아가 '억울한 일 당하지 않게 공부해라'라는 말은 취소하고 싶다.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의 말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 말의 힘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잘 알고 있다. 본인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이 내 말을 너무 잘 들을까 봐 문득문득 두려운 순간들이 있다. 종종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선생님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 부디 너희들 스스로 너희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가라고.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여행도 많이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라고.
내 삶에도 자신 없는 선생님은 오늘도 방황하고 불안해하며 걸어가는 아이들 옆에서 그냥 함께 걸어가 줄 뿐이다. 생활을 잘할 수 있게 관리해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꾸려가는 수많은 선택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부디 잘 걸어가길 응원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