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큰 일난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100%를 사용해선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60~70%의 능력만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능력이나 체력을 남겨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열심히 사는 삶이 부담스러운 나에겐 너무 솔깃한 이야기였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우리의 능력치 이상을 발휘할 경우, 꼭 부작용이 따른다. 내 몸과 마음이 축나거나 내 아이가 아프거나 내 남편이 짜증 나 있거나. 삶의 어느 부분에선가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나이든 내 주변인이든 내가 내 능력치 이상으로 열심히 살면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이 일 저 일에 관심이 많은 나는 늘 하고 싶은 게 많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다. 기타도 잠시 배웠다 플루트도 잠시 배웠다 요가도 했다가 발레도 했었다. 테니스도 배워보겠다고 온갖 용품들을 다 사놓고 두 번 치러나간 경험도 있다. 변명이지만, 테니스 동호회 만든 선생님이 인연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되면서 짧았던 우리의 동호회는 끝이 났기 때문에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하다가 포기하게 되면 자괴감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 꾸준히 하지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 할까 자책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아끼는 인간으로 또 나에게 너그러워졌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도전하는 게 나으며, 작심삼일도 삼일마다 계속하면 된다는 궤변을 나의 철학으로 삼기 시작한다. 처음엔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궤변이었지만, 이게 참 매력이 있다. 운동을 하기로 했다고 치자. 한 삼일 열정을 불태우면 게으름이 귀신 같이 찾아온다. 또 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그럴 땐, 일단 쉰다. 스스로와 싸우지 않는다. 그렇게 쉬면 또 '내가 이래서 되는가'하는 자괴감이 찾아온다. 그럼 또 작심삼일을 한다. 또 며칠을 하다 보면, 또 게으름이 찾아온다. 그럼 또 쉰다. 쉬다가 또 작심삼일을 한다. 이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게 된다. 아니, 앞으로는 못 나가더라도 뒤로는 안 간다.
마흔을 코 앞에 둔 나는 절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아등바등 살지 않을 것이다. 작심삼일을 매번 하면서 내 역량의 60-70%만 발휘하고 살 것이다. 우리 아들한테 책도 읽어주고, 남편한테 과도한 짜증을 내지 않으며 살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힘을 남겨두고 살 거다. 아주 조금씩의 진전만 하며 매일매일을 살아갈 거다.
원래 내가 꿈꾼 마흔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지만 괜찮다. 꿈꾸지 않았지만 이뤄진 것도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