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아내가 된 지금
나는 80년생이다. 49년생인 부모를 뒀다.
그 시절에도 우리 아빤 이모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의 딸바보였다.
요즘 부모 치고도 가정적인 아빠였는데 나는 그걸 다 커서야 알았다.
그리고 결혼해서 더더욱 알았다. 그런 남자는 흔치 않다고.
나의 엄마도 형제 많은 집 넷째 딸이었는데 외할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셨더랬다.
그런 엄마의 남편인 우리 아빠는 우리 눈에는 가정적이고 딸바보 아빠지만, 엄마에겐 외할아버지와 비교가 되는 그냥 그런 남편이었더랬다.
우리 아빤 늘 나를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으셨다.
남편이 그런 나의 아빠와 같을 거란 생각을 할 만큼 나는 똥멍충이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이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처럼의 멋진 남자인 건 항상 의문이었다.
남들은 나에게 '네 남편 인상 좋다.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 것 같다'라며 내 남편을 이야기하지만,
'좋은 남편'의 아이콘이 된 사람이 나에겐 그냥 그런 2% 부족한 남편이었다.
내가 아는 한 심리학 박사가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런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경계하라고.
"지나치게 화목한 가정에서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여자가 훗날 배우자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 이는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 나는 꽤 그런 편이지만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그리고 이 말을 되새기는 노력을 하며 살고 있다. 아빠는 아빠고 남편은 남편이니까.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는 아빠에게 못마땅한 얼굴을 하다가도 우리에게는 늘 "너희 아빠 정말 최고다, 너희 아빠 좋은 사람이다"라며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어쩌면 저 심리학자의 이야기를 깨닫고 계신 거였거나 자녀를 위한 참 길을 알고 계셨거나겠지.
공허할 때면 책에서 길을 찾고 진정이 되는 내게 남편이 "과제를 위한 책 말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라"며 책을 골라줬다.
그렇게 한참을 코 박고 책을 읽다 고갤 들어 보니, 나에겐 2% 부족하지만 내 딸에겐 세상 전부인 남자가 앉아있다.
그것도 그 옛날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힌 젊은 우리 아빠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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