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 Sep 01. 2022

안전한 곳에서 엉엉 울기

[엄마의 자기돌봄]



눈물에는 카타르시스, 즉 심리적 정화 효과가 있습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실컷 울고 나면

한결 마음이 후련하고 개운해지는 경험,

다들 해보셨을 거예요.


혹시 눈물 주르륵, 혹은

흑흑 흐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리 내서 꺼이꺼이 울어본 적

있으신가요?

아직 없다면 작정하고 엉엉 울어보세요.

눈물 또르르 정도의 정화와는

비교도 안 되는 상쾌함이 찾아올 거예요.


저는 원래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에요.

웃기도 잘 웃고 울기도 잘 웁니다.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눈물이 나는 거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핀잔을 들을 만큼

눈물이 많습니다.

잘 챙겨서 눈물로 배설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한창 개인 심리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이 저에게

작정하고 엉엉 울어본 적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마음이 힘들 때라 이미 충분히 많이 울고 있는데

작정까지 하고 울어야 되냐는 저에게

아이들 없을 때 안전한 곳에서

소리 지르며, 몸부림치며

울어보라고 권하셨어요.


별일 없는데 갑자기 그렇게 울기는 쉽지 않죠.

배우도 아니고요.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마침 아이들이 다 등원하고 혼자 있게 됐고

그래서 방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도 빽 치르고 베개도 쥐어뜯으면서

미친 사람처럼 울어보았습니다.

온몸을 써서 우는 건

마치 춤출 때처럼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어린아이들은 속상한 일이 있으면

길거리에서도 드러누워 난동을 피우기도 하고

악 소리도 지르고 엄마를 때리기도 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하죠.

물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할 수 있는 행동은

절대 안 된다고 따끔하게 가르쳐야겠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은

참 부럽습니다.


지금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도

어릴 때는 발을 동동 구르고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소리 지르며 울던

아이였을 텐데

자라면서, 어른이 되려 애쓰면서,

엄마 노릇을 하느라,

감정을 누르고 억압하며 살고 있었네요.

혼자 있을 때, 안전한 곳에서

한 번씩 터트려 주기로 해요.

체면 차리고 고개 가로저으며 참기만 하면

내가 너무 안 됐잖아요.


맨정신에, 벌건 대낮에,

처음으로 혼자 소리 지르며 엉엉 울어본 날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생각났어요.

우리 조부모님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몇 명의 자식을 먼저 보내신 분들도 많이 계셨어요.

제 할머니도 그러셨습니다.

전쟁통에 자식 셋을 잃고

이후에 7남매가 무사히 성인이 되셨지만

안타깝게도 제 큰고모가

제가 초등학생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당시 할머니는 저를 키워주셨듯이

아직 어린 사촌동생들을 돌보고 계셨는데

먼저 떠난 자식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할머니를

사촌동생들이 가만두지 않았어요.

"할머니 왜 울어?"

"할머니 울지 마"라면서

눈물을 닦아드리고 안아드렸어요.

아이들이 귀여우니 할머니도 금세 눈물을 닦고

웃으셨는데 그 모습이 저는 더 슬프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몇십 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그날의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할머니는 한 번도 큰 소리로 울어보지 못하셨겠구나.

자식 키울 때는 자식들 때문에,

손주 키울 때는 손주들 때문에,

잠시도 혼자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쉬면서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셨구나.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감정 노동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아이가 귀여워도

아이 앞에서는 제 감정을

100% 있는 그대로 표출할 수가 없죠.

아이 아니라 가까운 타인 앞에서라도

정말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안전한 공간에서 혼자 우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집이 여의치 않으면

차 안도 좋습니다.

이웃에서 내 울음소리를 듣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어요.

아니면 코인노래방 같은 곳에 가서

크게 반주를 틀어놓고

목 놓아 울어도 괜찮아요.

어디든, 내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지대를 찾으면 됩니다.


슬픈 일이 있다면,

청순가련하게 눈물만 흘리는 것보다

큰 소리로 엉엉 울어버리세요.

속을 뚫어주는 후련함, 완전 보장합니다.





© FreeCliparts,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음악 틀고 혼자 춤추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