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재질의
어느덧 서비스를 기획도 하고, 팔아도보고, 사용료의 입금을 받아보면서, 그리고 마케터와 기획자의 많은 채용새션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마다 기획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정의가 딱딱 떨어지는 일을 하던 사람에게는 심히 당황스럽다. 그래서 스타트업 관점의 기획과 마케팅을 재정의해본다.
기획은 사실 없는 직군이다. 왜냐하면, 우리 삶 전반에 기획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이 기획자가 하는 일은 때때로, 보이지 않고, 티 나지 않으며, 그리고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기획은 서비스를 만듦에 있어서, 서비스를 판매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티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티 내야 할까?
먼저 기획은 고객으로부터 와야 한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기획자는 채용세션이나 기획자 모임에서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럼 "고객과 어떤 방식으로 직접 이야기를 해보았냐?"라는 질문에 대답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대부분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이야기하지만, 그럼 인터뷰를 어떻게 했냐라는 질문에 실제 인터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서비스 기획자들은 UX를 이론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그 UX가 실패했을 때, 그 분석으로 도메인 지식이 부족했다 이야기를 한다. 지겹다.
좋은 기획은 고객의 목소리를 정성적으로 듣는 것이다. 많은 기획자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데이터 분석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지만, 이 부분은 마케터의 영역이다. 기획자는 먼저 사용자와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직접적인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 말이다. 그들의 문제가 어떤 스토리에서 발생하고, 그 문제가 얼마나 그들에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이 문제가 단순 푸념이 아닌지를 판별해내야 한다. 그래서 기획자는 사실 정량적인 데이터의 영역보다는 정성적인 CS의 영역에 더 가까워야 한다.
좋은 기획자는 데이터보다는 한 사람의 고객을 믿는다. 역설적이게도 숫자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정성적인 기획이 중요한 이유는 통계가 가지는 함정에 있다. 참 재미있게도 많은 데이터교의 신자들은 데이터가 인사이트를 줄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다. 숫자는 거짓말이 가능하다.(여러 책들을 읽어보자...) 때문에, 좋은 기획자는 가장 먼저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좋은 기획자는 최고의 영업직이다. 고객을 이해한다는 것은 고객이 처한 상황, 환경, 그리고 제품에 대한 열망을 고객의 스토리에서 찾아야 하고, 그 스토리들을 토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을 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고객을 찾아가고, 만나고 친구가 되는 것이다. 즉 만약에 당신이 지금 컴퓨터 앞에서, 기획서를 작성하는데, 단 한 번도 고객을 만난 적이 없다면, 당신은 컴퓨터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격이 없다.
좋은 기획자는 시장을 이해한다. 고객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미시적인 시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청과시장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고객일 때, 청과 상인들의 애환과 청과 상인들의 삶의 목표가 보이는 것이다. 그럼 청과상인들의 목표를 같이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나오고, 그 태스크가 제품이 되고, 기획자의 꿈이 되어야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제부터 전체 청과시장의 흐름과, 시장의 변동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것은 좋은 마케팅 전략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다. 내가 만났던 많은 기획자들은 위의 내용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순서가 반대다. 대부분 제품의 마케팅을 살핀다. 그리고 시장을 보고, 그리고 영업직의 이야기를 들으며, 데이터를 확인한다.
그리고 보통 왜 안 되지를 말한다. 이유는 하나다. 순서가 잘못됐으니까, 기획은 미시적인 것부터 거시적인 곳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수정이 일어나고, 시장에 fit을 찾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접하기 쉬운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구할 수 있는 마케팅 자료, 시장분석 자료, 그리고 동료의 의견을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봐야 할 대상을 우선적으로 못 본다. 스타트업을 하는 동안 만났던 대부분의 기획자가 이랬다. 나는 보통 기획자가 오면 가이드를 주지 않는다. 이유는 그들이 직접 고객의 소리를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시장의 5%라는 숫자의 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만난 그들은 언제나 내가 커피 한잔 사들고 만날 수 있었고,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였으며, 나의 제품이 언제 정식적으로 시작되는지 얼마면 살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실제로 출시가 시작되자마자 모든 달이 영업과 온보딩으로 가득 찰 수 있었다.
고객을 이해해야 보이는 것들, 많은 마케팅 강연들을 보다 보면 VALUE와 POSITION을 이야기한다. 나는 가치와 관련된 책 들 중에서 디커플링이란 책을 좋아하는데, 왜 기획자가 고객을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고객들은 모두 가치사슬 내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그 고객의 가치사슬을 알아내는 것이 바로 기획자가 해야 하는 일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고리는 좋은 마케팅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