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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Ha Sep 07. 2021

백신 예약: 얄미운 직원과 악덕 부장

내 삶과 기억의 아카이브


40대 이하( 18세~49세) 연령층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예약이 시작되었다.  우리 직원들도 하나둘씩  백신 예약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백신 휴가를 도입했다. 백신 접종 당일 오후와 다음날 휴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백신 접종 후 아픈 사람을 위해서는 휴가가 꼭 필요하겠지만, 별 증상 없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안 아픈 직원들은 출근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그런 직원은 없었다.


다들 한결같이 목요일 오후에 백신을 접종하고 금요일에 쉬기를 원한다. 물론 백신 접종 후 특이사항이 생길 수도 있으니 주말까지 쉬면서 증상을 보는 것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게 흐름이 끊기지 않고 쉴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원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예전에 실무자로 일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견장을 찬 관리자가 되고 나니깐 행동에 제약도 많아지고 책임질 일만 생긴다. 내가 새벽부터 나와서 열심히 일하면 성과를 낼 수 있던 실무자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직원들을 움직여서 일하게 해야 하고, 그들이 성과를 내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모든 것이 내 맘 같지가 않다. 군대에서 장성들이 한 소대의 일개 사병들이 일으키는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로 목이 날아갔던 이야기가 이제야 비로소 실감이 난다.


코로나 백신 예약 접종을 보면 그 사람의 회사에 대한 마음가짐을 알 수 있다. 토요일에 접종 예약하는 사람도 있다. 100명에 한 명 꼴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밑에 직원은 없다. 목요일에 접종 예약하는 사람이 가장 많고, 그다음에 월요일이다. 특히, 이번 달에는 추석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이다 보니 추석이 낀 주 목요일에 접종하게 되면 일주일 내내 쉴 수 있게 된다. 약삭빠른 직원들은 이 찬스를 놓치지 않고 어김없이 추석이 낀 주 목요일에 예약을 해왔다고 알려왔다. 남들 눈은 의식하지 않고 황금 같은 예약석을 먼저 차지해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회사에서 9/23(목), 9/24(금)을 징검다리 연휴라는 이유로 휴일로 지정해버린 것이다. 직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특히 그 날짜에 백신 예약을 한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날짜를 바꾸자니 눈치가 보이고, 안 바꾸자니 사라지는 휴가가 아깝고. 진퇴양난이다. 몇몇 직원들은 백신 날짜를 바꿔도 되냐고 나에게 물어왔고, 그날 밤늦게 다른 날짜로 변경하였다고 나에게 카톡으로 알려주었다. 나는 휴일이기 때문에 날짜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관리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먼저 예약한 날짜를 바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 팀의 직원들은 다른 팀은 다 바꿔주는데 왜 안되냐고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관리자는 이미 뱉어버린 말은 번복하지 않는다. 얄미운 직원과 악덕 부장의 싸움은 결국 악덕 부장이 이겼다.


 이런 일들을 보면 늘 드는 생각이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한 노인의 말이 집을 나가서 슬펐지만 그 말이 다른 말과 결혼해 새끼 말과 같이 와서 기뻐하는 노인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그 기쁨도 잠시 그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를 다친 아들을 보고 슬퍼하는 노인을 생각해 보면, 세상 일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힘든 일이 계속 있어서 죽으라는 법은 없다. 늘 좋은 일만 있어서 기쁨 속에서만 산다는 보장도 없다. 이렇게 기쁨과 슬픔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약삭빠른 직원과 권위에 사로잡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악덕 부장. 나는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래도 조직은 오늘도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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