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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주 Apr 24. 2021

11. 벌써 한 달하고 2주

글/그림_희주

누군가 알아챌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아실까요?





    벌써 한 달 하고도 2주쯤 흘렀네요. 항상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놓고 매일같이 끄적대기 바쁘던 노트도 한쪽 옆에 밀어두었습니다. 보물 1호나 마찬가지이던 아이패드는 충전도 하지 않은 채로 방치해 두고 있었네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뭔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할 시간이 늘어날수록 마치 깊은 우물에 빠진 축 처진 새끼 고양이처럼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얇게 비추는 빛을 향해 '야옹야옹' 소리를 내어보는 것뿐이었습니다. 단순히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시작은 그 슬픔이었을지언정 치닫는 곳은 본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태어나 살고 죽는가. 왜 하필 우리는 우리로 살아가는가. 우리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어차피 모두 언젠가 죽는다면. 


    철학적인 질문과 깊은 사색은 삶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는 비료가 되어주지만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저는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고 너무나 많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내가 나로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분명한지 의심이 갔습니다. 알아볼 수 없는 누군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를 누군가 알아챌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아실까요?


    생각하는 시간을 차단해버리자고 결심했습니다. 시간을 없애 머리와 가슴에게 기회를 주지 말자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눈과 귀를 바쁘게 만들어줄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와 왓챠의 영화들과 온갖 장르의 미드, 영드를 몰아보기 시작했고, 의미 없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새벽까지 깨어있었습니다.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렀고 생각 없애기 계획은 성공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득 훅 하고 들어오는 생각과 감정의 기습공격에 넋 놓고 당하는 제 자신을 마주합니다. 한 방에 녹다운되어버리면 회복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립니다. 아무 생각 안 하기, 감정에 기회 주지 않기 노력을 거듭하여 흐물흐물해진 마음은 겨우 쌓아 올린 모래성처럼 휩쓸려온 파도에 스르르 무너지고는 혼자 일어서지 못합니다. 큰 혼란이 옵니다. 무엇이 정답일까요. 생각을 해도, 생각 안 하기를 해도, 결국 상처투성이가 된다면 그중에 그나마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떤 방식이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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