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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JUBE Apr 18. 2023

인생 처음 정신의학과에 방문하다

어쩌면 성인 ADHD


정신력 문제가 아니라 전두엽 문제이길


 ADHD 검사를 받으러 오는 많은 환자들 중에 상당 수가 자신이 ADHD이길 바라며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본인을 힘들게 했던 많은 부분들이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전두엽의 문제라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주의력 문제였는데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의 게으름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나 스스로 극복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 혼자 나의 정신상태를 가늠하는 것보다 전문가의 정확한 소견이 듣고 싶어 인생 첫 정신의학과 예약을 잡았다.



예전엔 정신의학과를 심각한 마음의 문제가 있어야 방문해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다양한 매체에서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은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비쳐줬다. 감기에 걸리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낫기도 하지만 조금 더 빠르게 낫고 싶을 땐 병원에 찾는 것처럼 마음의 문제도 똑같은 것 같다. 해야 할 일들을 만족스러운 퀄리티로 끝내지 못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며 자아효능감을 상실했는데, 더 심해지면 이 낮은 자아효능감과 자존감 문제가 결국엔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으로도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정신의학과는 담당 의사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단 말을 들었다. 자기와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야 치료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한다. 후기들을 정말 열심히 찾아본 후에 2곳에 전화를 걸었다. 두 병원 모두 가장 빠른 예약 날짜가 3주 후였고 난 가장 빠른 날짜로 상담받을 수 있는 병원을 골랐다. 병원에 도착하고 문을 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사는데 지장 없고 조금 불편한 것뿐인데 병원에 가는 것이 맞을까? 나도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란 낙인이 찍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간 병원은 내가 평소 다니는 내과와 다를 것이 없었다. 접수를 하고 내 차례가 되길 기다렸다. 들어가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무슨 검사를 할지 떨리면서도 내 상태에 대해 자가진단이 아닌 전문가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뜨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은 약 50분 진행되었다. 처음엔 내가 느끼는 증상들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편하게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해야 할 일들의 압박감을 느끼면 심장이 빠르게 뛸 때가 있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닥치면 문제를 직면하기보단 잠이나 유튜브 등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곳으로 항상 도피한다고 말씀드렸다. 긴 시간 집중을 못 해서 느끼는 불편감도 있고 내가 꿈꾸는 삶과 현재 내 행동의 간극이 너무 커서 느끼는 약간의 자기혐오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드렸다. 무엇보다 요즘 느끼는 무기력감과 심각한 귀차니즘도 자아효능감과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는데 아무 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깊이 들여다보니 꽤나 많은 문제를 갖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설명하면서도 이 정도면 '우울증에 무기력증에 불안장애에 성인 ADHD'까지 다 갖춘 패키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따뜻하게 설명을 들어주시던 선생님은 혹시 어렸을 때도 산만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곤 했는지 등등의 질문을 물어보셨고 놀랍게도.. 나에게 전부 해당되는 말들이었다. ADHD를 진단할 땐 어렸을 때부터 증상들이 있었는지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성인 ADHD일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ADHD 약이 오남용 되는 경우가 많아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약을 처방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우울증으로 인한 단순 주의력 저하인지 ADHD인지 정확히 구분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하셨다.



어쩌면 ADHD일 수도 있다는 말이 무섭고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단지 게을러서, 의지가 약해서 주어진 일들을 해내지 못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물론 성인 ADHD는 ADHD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보다 효율적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만, 병원의 도움을 받으면 지금보단 더 나은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 드라마틱한 변화를 생각하면 또 괴리감이 들 수 있으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시겠다고. 오늘 검사를 했고 토요일에 결과를 들으러 간다.  '당신은 무슨 병에 걸렸습니다!' 하고 진단 내려주길 바랐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자가진단 테스트들을 해봤는데 전부 나와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말실수랑 게임 빼고는 전부 해당된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매번 지옥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보통 한 시간 이상 걸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 핸드폰과 카드를 찾는다. 카드는 정말 맨날 잃어버려서 애플페이를 목 빠져라 기다렸다. 근데 막상 애플페이가 도입되니 현대카드 발급이 귀찮아서 이것조차 미루고 있는 상태이다..(맨날 송금해요....) 유튜브 영상도 2배속은 아니어도 항상 오른쪽 화살표에 손을 올려두고 10초씩 뒤로 돌려가며 시청한다


오은영 박사님이 말하는 성인 ADHD

-할 일을 잘 미룬다
-약속 시간에 늦는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관심과 흥미에 따라 편차가 극심하다
-충동성이 높다
-지루한 것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학교 과제도 정말 발에 불 떨어졌을 때 시작하고 항상 마감 1분 전에 제출하곤 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가끔 까먹고 연락도 안 해서 손절당할 뻔한 적도 있다.. 이 정도면 ADHD 맞는 거 같고요... ADHD는 시끄럽고 과격한 행동들을 한다는 편견이 있어서 나는 단지 건망증이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문제가 없었고 규율을 어기는 학생도 아니었어서 끈기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지 ADHD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행동문제가 없는 주의력 저하도 ADHD로 진단받을 수 있다고 한다. 조금 더 일찍 병원에 가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ADHD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들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 및 불안감
-부정적인 가족관계
-불안정한 직업
-낮은 학업 성취도
-약물 및 알코올 남용
-대인관계의 어려움



정신의학과에 방문한 만큼 전반적인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기본검사도 같이 진행했다. 이 검사 결과도 토요일에 들을 수 있다. 생각도 못했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긴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현재 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어려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를 챙기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따뜻하게 보듬어 줘야지.


⭐️꾸겨진 인생 다시 펴기 Point⭐️

1. 자신의 의지로 안될 땐 전문가와 상담받아보기
2.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정하기
3.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기
4.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보단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



저처럼 현실에 무기력감을 느끼고 무언가 할 에너지가 고갈되었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한 번쯤 객관적인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이런 글을 쓰는 게 아픈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다시 잘 살아보기로 다짐한 이상 솔직하게 기록하고 얘기하는 게 저한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픈 게 제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유전적인 요인도 크다고 하니까요. 물론 환경적인 요인도 있지만요. '나 치료받고 집중력 너무 좋아져서 막 똑똑해지고 그럼 어쩌지..'?'막 인생 너무 재밌어지고 의욕 넘치고 그럼 어쩌지..?'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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