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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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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15. 2022

포켓몬이 뭐라고

부제_밴댕이 속 알 딱지


초등생 사이 포켓몬의 인기가 대단하다.


나와 남편은 "언제적 포켓몬이냐.. 참 오~래도 해 먹는다" 말하면서도 기꺼이 아들의 행복을 위해 자발적, 적극적으로 포켓몬 마케팅에 놀아나는 소비자로 지내는 중이다.


-


얼마 전에는 졸업한 유치원에 잠깐 갔다가 원장 선생님께 포켓몬 컬러 마스크를 선물 받아왔다.

새부리형 마스크는 불편하다며 새로 사준 컬러 마스크는 거들떠도 안 보더니 포켓몬 캐릭터가 그려진 새부리형 컬러 마스크는 편하다고~ 좋다고~ 신이 나서 쓰더라.


"오늘은 너로 정했다~!"


이 멘트를 날리며 선물 받은 4개의 마스크 중 하나를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을 보며 내 손가락은 어느새 네이버 검색창에 마스크 브랜드명을 검색 중...


아들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포켓몬 마스크를 검색하던 중 '오~ 타이밍 굿!' 그날이 딱 마스크 쇼핑 라이브를 하는 날이었던 거다. 시간 알림까지 맞춰 라이브 방송에 접속한 후 30매 1박스 구매 완료!


아들이 좋아할 만한 마스크 색상과 포켓몬 캐릭터까지 따져서 고심 끝에 선택한 '이상해씨' 마스크. 캐릭터를 별로 좋아할 것 같진 않았지만 마스크 컬러에서 핑크와 노랑을 빼니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주문 폭주로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던 마스크는 금방 도착했다. 하교 후 포켓몬 마스크 박스를 보자마자 후다다닥 뜯어본 아들.


하지만 이상해씨로만 구성된 마스크를 보더니 실망한 눈치였다. 엄마도 다양한 캐릭터가 있는 걸로 사주고 싶었지만 캐릭터는 하나씩밖에 선택할 수 없었고, 마스크 색상을 생각해서 이걸로 했다고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아들은 피카츄나 리자몽이나 아니면 다른 000이 더 좋은데~~~ 하면서 아쉬운 말을 늘어놨다. 30매면 한 달이면 다 쓰니 거의 다 쓸 즈음 그때 원하는 걸로 사주겠다고 다시 한번 아이의 마음을 달랬다. 쇼핑 라이브 시간에 맞춰 사느라 아이와 함께 고르지 못했던 건데 나름 고민해서 골랐지만 결과적으로 나도 나의 선택이 후회스러웠다. 좀 더 멋진 캐릭터로 샀어야 해.... 하아... 그놈의 멋진 거...


-


그리고 다음날 아침-


"무슨 색깔 마스크로 쓸까?" 물었더니 답이 바로 들리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별로다. 이상해씨 마스크가 별로 안 쓰고 싶단다.


'아... 아침엔 화내지 않아야 하는데..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끓어 올라..'


"엄마가 이거 다 쓰면 다른 캐릭터로 사준다고 했는데 그래도 이게 그렇게 쓰기 싫어? 그럼 그냥 다른 친구들한테 선물해줄까? 포켓몬 마스크 좋아하는 친구들 많을 거 같은데."


욱하는 마음에 결국 싫은 소리가 나왔다. 그래도 아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풀지 않았고 나는 굳이 사달라고도 하지 않은 마스크를 애써 사 준 내가 후회스럽고 이왕 살 거면 아이에게 물어보고 살 걸 쇼핑 라이브가 뭐라고 그 시간에 맞춰 샀을까 그게 또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어차피 마스크는 계속 써야 하니 다음에는 원하는 걸로 사주겠다고 말하고 또 말했는데도 싫은 티 팍팍 내는 아들이 얄밉고 섭섭했다.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굳이 찾아서 사준 엄마가 잘못했다! 그냥 너 원래 쓰던 마스크 쓰고 가!"


1절만 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한 번 감정을 뱉어내면 더 커지고 만다. 2절까지 하고 나서 울그락 불그락 하는 표정으로 뒤돌아 주방으로 가버렸다. 순간 아이의 얼굴이 보기 싫었다.


'내 맘도 몰라주고..'

'내가 너 생각해서 샀는데 이럴 거야 정말? 섭섭하다~ 섭섭해!'


30살 차이 나는 애 앞에서 내가 애처럼 굴고 말았다.


아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눈만 껌벅껌벅했다. 아침에 이렇게 큰 소리를 낸 적은 없던 것 같다. 아침만큼은 조금 화가 나도 참고 웃으며 학교 보내려고 노력해왔기 때문. 그만해야지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짜증 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2절까지 마치고 뒤돌아서자 아이는 5분 뒤 나갈 것이고 이렇게 학교에 보내면 나도 아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붉어진 얼굴이 되돌아오기도 전에 아이에게 다가가 토닥여주며 서로 마음을 풀었다. 솔직히 다 풀리진 않았지만 풀린 척하며 아이를 안아주었고, 아이도 나도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


쾅-


아이와 남편이 현관문을 닫고 나서자 더 큰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를 위한다면서 사달라고 하지도 않은 포켓몬 마스크를 사서 안겨 줘 놓고 이제 좋아해라~ 강요하다니.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내가 어이없었다. 아이 입장에선 포켓몬 마스크를 샀다길래 기대했는데 원치 않는 캐릭터만 있어서 속상했던 건데. 그게 뭐 그리 잘못한 거라고. 한 번 더 달래며 화내지 않고 말할 수 있었는데... 아침부터 화내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쏟아낸 내가 싫었다.


-


불편한 마음으로 오전을 보내고- 점심 이후 금방 돌아온 하교 시간. 교문 앞에서 다시 만난 아들은 활짝 웃어 보였다.


"엄마~ 오늘 내가 선물 줄 게 있어요~"


자마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게 보여준다.


"엄마 아빠한테 편지 썼어요~"


오늘 수업 시간에 부모님께 편지 쓰는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작은 하트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표지가 예뻤다. 신난 표정으로 아이가 편지를 펼치자 나는 순간 마음이 멈칫했다.


하트 모양 입체 카드였는데 아이는 입체 카드를 처음 만들어봤기에 그럴듯한 카드 안쪽을 빨리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입체 카드의 모양보다 아래 편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 포켓몬 마스크 사줘서 감사합니다.'




아..... 아들아 미안하다 ㅜㅜ


엄마가 마음이 밴댕이 속 알 딱지보다 작아서 네 마음을 불편하게 했구나. 포켓몬 마스크를 처음 받아 본 순간부터 이 말을 못 들어서 내가 그렇게 베베 꼬였던 걸까. 그저 아이가 기뻤으면 하는 마음으로 구매한 포켓몬 마스크였는데.. 나의 어리석음과 옹졸함으로 아이에게 마스크 사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까지 받고 있는 내가 창피했다.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편지를 건네주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


포켓몬이 뭐라고...


웃지 못할 포켓몬 마스크 해프닝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아직은 한참 어리석은 엄마이지만 아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는 잘 보관해두고, 오늘의 마음을 일기로 남기며 한 뼘이라도 마음의 평수를 넓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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