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국어 영역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2018년 11월, 수능 한파에 오들오들 떠는 수험생들을 공포에 얼어붙게 한 문제는 국어 영역 시험지에서 독사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평범한 수험생이라면 '나는 난독증인가?'라는 의심을 했을 법한 그 문제, 바로 2019학년도 국어영역 마의 31번 문제이다.
처음 3학년 담임을 할 때의 학생들이 치렀던 수능 시험이다. 안 그래도 1교시는 다른 영역보다 더 긴장되는데, 31번을 맞닥뜨리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과학은 미지의 영역이지만 어쨌든 국어가 전공이므로 지문을 근거로 문제를 간단히 풀이하고자 한다.
'질점'은 물체의 중심에 모든 질량이 총 집결한 이상적인 점으로 물리학적으로 이론으로만 존재한다. 즉, 부피만 없고 질량만 있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만유인력은 두 질점이 서로 당기는 힘인데 [A]에 따르면 만유인력의 크기는 두 질점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또한 만유인력은, 그 천체를 잘게 나눈 부피 요소들 각각이 그 천체 밖 어떤 질점을 당기는 만유인력을 모두 더하여 구할 수 있다. <보기>에 의하면 밀도가 균질하거나 구 대칭인 구를 구성하는 부피 요소들이 P를 당기는 만유인력들의 총합은, 그 구와 동일한 질량을 갖는 질점이 그 구의 중심 O에서 P를 당기는 만유인력과 같다.
지구 껍질의 질량 합계는 태양 껍질의 질량 합계보다 작고 만유인력은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한 질점이 m으로 같다면 만유인력의 크기는 다르게 된다. 태양의 질량은 지구의 질량보다 훨씬 크므로 태양의 질점이 지구 전체를 당기는 만유인력과 지구의 질점이 태양 전체를 당기는 만유인력은 같을 수가 없어 답은 2번으로 도출된다.
[A]에서 '지구보다 질량이 큰 태양과 지구가 서로 당기는 만유인력이 서로 같음을 증명할 수 있다.'는 문장이 정답을 정답이라고 찍지 못하게 한다. 함정인 것이다. 하지만 [A]의 내용과 <보기>를 잘 읽으면 풀 수는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며 풀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독해력과 과학적 배경지식이 요구된다. 물리에 대한 스키마 없이 오로지 주어진 글만 보고 풀어야 하므로 어려운 것이다. 극악무도한 난이도에 국가가 주관하는 공인된 시험에서 사교육을 조장한다며 언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평가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관련 링크 참조)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70321)
초고난도 문항을 더 이상 출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여전히 국어 영역의 킬러 문항은 수험생을 괴롭히고 있다. 나 역시 6, 9월 평가원 모의고사나 수능이 끝난 다음 날, 긴장 상태로 학교에 출근한다. 학생들이 어떤 문제를 들고 교무실로 쫓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2019학년도 수능이 끝난 다음 날의 우리 반은 회색 빛깔 그 자체였다. 그간 받아 왔던 모의고사 성적보다 훨씬 저조한 수능 성적에 아이들은 현실이라는 벽의 높이를 생생히 체감했을 터였다. 책상 위 엎드려 꿈쩍 않는 반 아이를 어루만지고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어마어마한 난이도의 수능을 치른 수험생의 마음과 동기화되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평가원을 원망하기도 했다.
2022학년도 수능이 20여일 남은 지금, 수험생들은 가을 공기 물든 단풍과 깨끗한 날씨를 만끽하지도 못하고 좁은 책상 앞에서 오늘도 책과 열심히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은 자존감이 쉽게 깎인다는 부작용을 낳지만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진취하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조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무거운 몸과 정신을 의자에 앉히며 우직하게 수험생의 하루를 살아내는 아이들이 공부한 만큼의 성적을 정직하게 받을 수 있는 시험 난이도가 되기를 바라 본다.
중요한 것은 쓰러지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다시 일어나느냐 마느냐다.
- 빈스 롬바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