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 (2014)
우리는 언제 행복함을 느끼며, 무엇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행복에 대해서 정해진 것은 없으며,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행복의 기준 또한 제각각이다. 따라서 행복을 하나의 ‘무엇’으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오롯이 혼자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산드라의 주말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복직하기 위해 회사와 맞서며 고군분투했던 산드라가 결과적으로는 해고당하기를 선택한 후, 남편과의 통화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행복하다”였다. 이 대사를 통해 내가 느꼈던 낯섦과 씁쓸함은 영화 전반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모습과 재투표결과가 ‘행복’과는 멀게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대사는 우리로 하여금 뭉클함을 느끼게 하고, 그녀의 삶에서 희망을 엿보게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해고되면서도 ‘행복’을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산드라는 주말 내내 동료들을 찾아가 월요일 재투표에서 보너스 대신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설득한다. 우울증으로 휴직을 했던 산드라는 다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복직을 신청했지만, 동료 대다수가 그녀의 복직 대신 자신이 보너스를 받는 것을 선택하면서 해고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작업반장이 산드라가 해고되도록 여론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있었고, 처음부터 그녀의 편에 섰던 줄리엣이 나서서 재투표를 요구한다. 산드라의 부탁에 동료들은 다시금 자신의 동료와 자신의 보너스 중 양자택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여기서 동료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드라 대신 보너스를 선택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그녀에게 꼭 표를 주겠다는 동료, 1년치 공과금을 그녀 때문에 포기하기는 어렵다는 동료, 자신의 의견보다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가 더 궁금한, 군중심리를 보여주는 동료, 어려운 선택지를 내미는 그녀에게 분노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동료. 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렇지 않아도 우울증 때문에 불안정했던 산드라의 자존감은 요동친다.
이러한 상황이 힘들기만 한 산드라는 남편에게 “헤어질 것 같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하고, 안정제 한 통을 입안에 털어버리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그녀에게는 언제나 그녀의 편에 서주는 남편과 줄리엣을 비롯해 그녀에게로 마음을 돌린 7명의 동료들이 있었다. 아마 산드라는 이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으며 자신이 ‘투명인간’이 아님을 자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재투표의 결말은 결국 산드라를 택했던 동료 반, 보너스를 택한 동료 반. 과반수를 얻지 못한 산드라의 패배로 끝나지만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새로운 반전을 이끌어낸다. 자신을 도와준 알퐁소의 재계약과 자신의 복직을 놓고 또 다른 선택을 요구하는 기득권층을 거부하고 새로운 내일에 도전하는 산드라의 모습은 힘겨운 싸움이지만 싸움에 승패를 떠나 도전 자체의 의미와 새로운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동료와 보너스를 두고 양자택일하게 만든 사장과 동료들 사이의 편을 갈라 서로를 적대적으로 만든 반장의 모습은 개인이 ‘우리’일 수 없도록 만드는 구조적 문제와 경쟁이 과열된 우리사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소확행의 바람이 그칠 줄 모르는 끝없는 경쟁 사회 속, 막연히 행복만을 좇기보다 산드라가 마지막으로 했던 선택처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의 행복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이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