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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뉴 Jan 22. 2019

요즘 세대의 채울 수 없는 허기에 대하여

리틀 포레스트 (2018), 윤종신의 Do It Now


배가 고파서 왔어, 정말. 허기져서 온 건데.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혜원의 마음이 궁금한 친구가 묻는다. 혜원은 ‘배가 고파서 왔다’고 대답한다.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묻지만, 우리는 그 답의 의미를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도시에서의 '분주함'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요즘 청년들의 '허기'를 말이다.


  “배고파서”라는 간단한 혜원의 대답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에서 팍팍하게 살아가는 혜원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혜원은 도시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런 혜원과 마찬가지로, 고층 빌딩이 늘어진 도시에서 일과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끼니를 때우는 우리들의 모습도 어딘가 모르게 허기져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먹는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삶의 에너지를 얻기보다는 그저 일을 하기 위해, 살기 위해 먹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영화에서는 내내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한다. 먹고 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농사를 짓고, 맛있게 골고루 먹기 위해 요리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의식주다. 취업 때문에 버둥대고, 스펙 쌓기에 등골이 휘는,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 따기’인 청년들에게는 유일한 낙이 먹거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먹방, 쿡방, 맛집 탐방이 유행하는 요즘에도 정작 현실 속의 절반은 인스턴트, 간편식품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런 우리들에게 꿈같은 장면을 선사한다. 아담한 시골집에서 편안한 ‘몸빼바지’를 입고 신선한 재료로 매번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렇듯 <리틀 포레스트>의 주제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자는 것인데, 영화를 보는 관객의 현실은 ‘솔로’이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보는 '우결', 아이를 낳고 싶지만 낳기를 포기한 딩크족이 보는 '슈돌', 집 밥이 현실이 아니라 로망인 1인 가구가 보는 '삼시 세 끼' 등 가짜를 보며 ‘대리 만족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대개의 청년 관객들은 일상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인스턴트로 가득했던 도시를 떠나 건강한 재료로 좋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농촌으로 와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기 시작하는 혜원의 모습에 열광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우리에게 또 다른 판타지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어쩌다 우리는 소확행을 찾게 되었을까?  


  불황과 양극화로 ‘헬조선’, ‘금수저’ 같은 암울한 말들이 유행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너무 훈훈한 느낌의 단어가 등장했다. 최근 트렌드 키워드로 떠오른 ‘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한 말이다. 하루키의 ‘소확행’은 다음과 같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리틀 포레스트>에서처럼 말 그대로 사소하고 소박한 정경이 그려진다. 이렇듯 ‘소확행’은 허황된 꿈 대신 일상적인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행복을 누리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그렇게 보면 ‘소확행’은 결국 현실을 외면할 때만 가능한 ‘정신승리’의 다른 말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또, 왜 청년들은 ‘소소한’ 행복만을 좇아야 할까.


지난 4월, 음반 'Do It Now'를 발표한 가수 윤종신은 ‘요즘 세대’에게 노래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니 생의 멋진 날들이 안타깝게 지나고 있어. Do it now Do it now Get it now. 지금 넌 너무 아름다워. 자 지금의 널 보여줘 봐. 시행착오 당연히 있을 수 있어. 그래도 안 한 것보다 나아. 그것마저도 너 자연스러운 너. 깨닫는 과정 속의 너”


'Do It Now'는 윤종신이 최근 몇 년간 만나고 겪어본 주변의 2, 30대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윤종신은 이번 곡에 대해 “최근 만나본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결코 무모할 수 없도록 세팅이 돼 있달까”라며 “이익이 많은 쪽보다는 손실이 적은 쪽을 선택하는, 지극히 안전 지향적인 자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요즘 세대’의 반응은 다소 냉소적이다. 한 번의 실패가 한 개인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오롯이 그 실패를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사회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점점 더 양극화되고 개인화된 사회에서 모두에게 뒤를 봐줄 부모나 주변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지르고 실패하면 다시 전으로 돌아가기 힘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이 바로 ‘요즘 세대’다.



대단한 행복도 당연하게 꿈꿀 수 있는 사회


"남이 정해주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어."


  고향에 왜 돌아왔는지를 묻는 혜원에게 재하가 대답한다. ‘요즘 세대’는 '남이 정해주는 삶' 안에서 괴롭다 느끼지만, 이것을 떠나면 인생에서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을 떠나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을 택한 혜원과 재하의 결정은 현실의 ‘요즘 세대’들은 감히 실행하기도 어려운, 무모하면서도 용기 있는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도 더 전에 나왔던 용어인 ‘소확행’이 뜨고 있는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있다. 지속적인 저성장 기조의 사회에서 양극화와 계층화는 더욱 뚜렷해지면서 ‘상대적인 박탈감’과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전제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급부로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현실에서 즉각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소비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게다가 소통방식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또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SNS의 발달로 ‘나 이렇게 행복해’라는 소확행이 ‘나도 너만큼 행복해’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확실성 시대에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의 ‘소확행’이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고 해서 ‘요즘 세대’에게 ‘대확행’이 올 수 있을까?


  일본에서 등장한 ‘사토리세대’나 한국의 ‘헬조선’ 담론이 보여주는 것은, 각박한 고도성장기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더 나아질 미래도 없으며, 밑도 끝도 없는 ‘노오력’의 허무함을 간파한 요즘 세대의 절망이다. 이들은 현실의 행복이라는 몽상에 젖어 부당함에 분노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분노한다고 해도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도저히 긍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취업난을 겪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은 ‘달관’이 아니라 ‘포기’와 ‘체념’인 것이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사회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감정은 개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관련된 것이면서, 또한 집합적으로 구성되는 정교한 프로그램이다. 요즘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이 체념과 냉소라면, 혜원과 재하의 용기 있는 결정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판타지로 남게 될 것이고, 윤종신이 ‘요즘 세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요즘 세대’를 살아보지도 않은 꼰대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념과 절망을 찢고 나온 목소리들은 단순히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해버린 ‘최소한의 정상성’이나, ‘상식’의 복원을 요구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문제들을 보다 근본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기획이고, 이는 결코 ‘우선순위’에서 탈락시키거나,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나,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이다. 더 이상 소소한 행복만이 아닌 대단한 행복도 당연하게 꿈꿀 수 있는 사회를, 현실 속 혜원과 재하가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정명준(2017), 한국 청년세대, 일본 달관 세대를 비교한다, 한일 청년세대 비교 지순협 논문
‘달관 세대’가 아니라 ‘절망 세대’다, 경향신문, 2015.03.07.
왜 지금, 소확행일까?, 프레스맨,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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