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꿈 Oct 06. 2020

겨울이 오면 바를게

추석을 앞두고 남편과 한가지 계획을 세웠다.

바로 집안 대청소!


평소 정리벽이 전혀 없는 나 + 정리벽이 있지만 열정이 없는 남편


이 조합으로 살다보니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때에도 설렘과 아기자기한 감성은 전혀 없이 원래 쓰던 가구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이삿짐 센터 아저씨의 입맛에 맞게 배치하고 그럭저럭 2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원래도 내 손을 타지 않고 정리된 이 짐들이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섞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집은 아기를 키우는 집 답게 비상약을 잔뜩 구비해두고 있다가 아픈 곳이 생기면 신속히 조치를 취하곤 했는데 급히 쓰곤 휙 던져넣는 사람이 있어(=나) 약을 찾을 수 없는 수준까지 약들이 수북히 쌓여버렸다.

어쨌든, 5일간의 연휴동안 딱히 할 일도 없어 하루 한 공간씩 정리하기로 약속을 하고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조금씩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꿈이가 행복이 월령이었던 27개월대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

우리가 정리정돈 하는 사이 방치될 것만 같은 아기에 대한 걱정 + 우리가 정리정돈 하는 사이 나오는 먼지나 쓰레기에 꿈이가 노출될까 하는 걱정에 아기가 함께 있을 땐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나야, 너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었구나.


그렇게 아기들은 자기네끼리 놀게 두고 장 속에 있는 물품들을 다 꺼내들었는데 꿈이가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꿈이야, 엄마 아빠 정리하고 있어. 행복이랑 놀아."

"너무 지지라서 정리해?"

"응. 여기 너무 지지라서 꿈이가 여기 안 왔으면 좋겠어."


"어! 이게 뭐지?"


꿈이는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반가워했다.


"그게 뭔데?"

"겨울이 오면 바르는거야. 아하! 엄마랑 아빠가 겨울이 오니까 꿈이 주려고 찾았구나."


꿈이는 장 속에서 4개씩이나 발견된 한 번만 쓰고 남아버린 립밤을 집어들었다.

작년 가을-겨울 사이에 꿈이 입술이 건조했는지 자꾸 터서 약국에서 하나 사서는 휙 던져버리고 잃어버린 줄 알고 또 사서 바르고는 휙 던져버리길 4번이나 했나보다.


작년 가을쯤, 립밤을 바르는 이유에 대해 한 번도 스스로 언급해 본 적 없는 꿈이가 올해는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이 "겨울이 오면 바를게"라고 이별 인사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1년전의 일도 기억한다는 것,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알아듣든 말든 계속 말해주기.

명심 또 명심


<기쁜 소식>

[우리아이가 말이 늦어요]가 2쇄를 찍게 되었어요!

관심가져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차분하게 말해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