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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18. 2022

마스크 뒤에 숨는 아이들

마스크라는 부분적 익명성을 십분 활용하는 아이들이 담긴 시

특수학급 두 아이와 함께 가는 통합 수업 시간에 교실 맨 뒤에 앉아 있으면 재미있는 광경을 발견할 때가 많다. 오늘은 마스크라는 부분적 익명성을 교활하게 활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만났다.


 



마스크 뒤의 이름 없는 노래

 

수업 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당장 노래를 멈추라는 

선생님의 엄포에  

잠깐 찾아온 정적


선생님의 뒷모습을 놀리듯

다시 들려오는 흥얼거림

스물다섯 중 하나도 노래하지 않는데

점점 커져가는 노랫소리


미간을 찌푸리고 돌아선 선생님을 향하는

쉰 개의 고요한 눈망울


마스크 뒤의 숨은 노래는 사라지고 

붉어지는 선생님의 얼굴 

천진한 눈을 깜빡이며  

마스크 뒤에 숨어 웃는 아이들


………………………


*시시한 시의 뒷 이야기*


가끔 마스크는 무기명 투표나 실명 없이 쓰는 댓글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스크라는 부분적 익명성을 교활하게 활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만난 날, 인간 본성의 또 다른 단면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특수반 두 아이의  통합수업을 위해 일반 학급에 가서 늘 앉던 교실 맨 뒷자리에 두 아이와 함께 앉아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수학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한참 설명을 하는 중에 어디선가 작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돌아서며 노래를 멈추라는 선생님의 말에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아니라며 천진한 눈망울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시 수업을 위해 칠판을 향한 선생님의 뒷모습에 한 곳에서 시작된 흥얼거림이 작은 합창으로 변하였고 몹시 화가 난 선생님의 얼굴이 자신들을 향하자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양 동그란 눈으로 선생님 화나시니까 조용히 하라고 서로에게 신호를 보냈다. 노랫소리는 사라졌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아이들은 소리 없이 킥킥거리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교실 맨 뒤에서 우리 반 두 아이를 살피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동안 눈이 맑기 때문에 또는 몸이 작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순진하고 천진하고 맑은 마음을 가진 것처럼 오해되는 아이들이 가끔은 얼마나 교활하게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제일 크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진한 표정을 짓던 아이로부터 시작된 작은 노래가 선생님의 기분을 살피는 척하며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이어져 고요한 흥얼거림의 합창을 이루는 모습을 교실 맨 뒤에 앉은 나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꼬리를 내려야 할 때라는 것을 정확히 포착한 아이들이 수업을 위해 다시 돌아선 선생님의 뒷모습 뒤에 숨어 선생님을 맘껏 조롱했던 자신들의 장난이 주는 쾌감을 소리 없는 웃음으로 뿜어내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댓글에 담기는 악의와 거짓과 비난과 조롱은 내가 하는 일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익명성이 주는 안심과 보호는 인간의 부정적인 본성의 발산을 야기하는 것 같다. 

오늘 통합 수업 시간 내내 나는 몹시 답답했다. 내가 쓴 마스크 때문인지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의 반을 가려주는 마스크의 부분적 익명성을 교활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의 또 다른 단면을 봐야 했기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5088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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