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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Feb 06. 2023

묘목을 붙들어주는 지줏대를 아시나요?

우리가 서로의 지줏대가 되어준다면 우리 모두는 커다란 나무가 될 것이다.

학교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건물 주변에 조성된 정원에 작은 나무들이 심겼다.

바람 불면 쓰러질 듯한 가녀린 나무를 지줏대가 든든하게 붙들고 있었다.

아, 내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은 것은 누군가가 나의 지줏대가 되어주었기 때문이구나.

내가 이렇게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우기까지 누군가가 나를 붙들어주었던 거구나.

생각했다.



너라는 나무에게 지줏대가 되고 싶다


인생을 걷다 작은 묘목을 만나면 

그 휘청이는 허리와 텅 빈 가지가 쓸쓸하다


오래전 나도 작은 묘목이었다

작은 바람에도 허리가 휘청이고

파리한 이파리 몇 장 없는 가지가 서글펐다


내 가녀린 뿌리를 뻗을 수 없는

단단한 세상이 아팠다


그런 내 곁에 누군가 지줏대로 서 있었다.


나 스스로 뿌리를 내려 혼자 설 수 있기까지

내 가지가 세상으로 뻗어갈 수 있기까지

내 가지에 나뭇잎이 무성해지기까지


나도 네게 지줏대가 되어주고 싶다 


네가 선 땅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릴 때까지 

네 가지가 세상을 향해 마음껏 뻗어갈 때까지

네 나뭇잎이 누군가의 그늘이 될 만큼 무성해질 때까지 


그때까지

나는 지줏대가 되고 싶다

너라는 작은 나무의 지줏대가 되고 싶다




걸어온 인생을 뒤돌아보면

어려서는 부모님이

자라면서는 형제들과 친구들이

결혼 후에는 남편이

나이 먹어 가는 지금은 아이들이 

어쩌면 내가 깨닫지 못한 어느 순간에도 잠깐씩 나를 잡아주던 이들이

내 옆에 있었다. 

수많은 그들이 나의 지줏대가 되어주어서 나는 '나'라는 나무가 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해마다 키가 작아지는 것 같은 부모님의

녹록지 않은 세상에 발을 내딛는 아이들의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친구들의

학교에서 만나는 나의 남다른 학생들의

어쩌면 지나다 잠깐 나에게 기대어 오는 이들의

든든한 지줏대가 되어주고 싶다.

그들이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넘어지지 않도록

빈 가지가 쓸쓸해 혼자 울지 않도록 

옆에 있어주고 싶다.


그래. 아무리 커다란 나무도 혼자 크는 법이 없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고

가지가 뻗을 수 있게 바람을 막아주고

잎이 무성할 수 있게 빛을 나누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지.


우리가 서로의 지줏대가 되어준다면 우리는 모두 커다란 나무가 되겠지.

그리고 세상은 커다란 나무로 가득한 근사한 숲이 되겠지.

그리고 나무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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