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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26. 2023

나는 미국에서 럭셔리한 두부조림을 먹는다

그들 눈에만 럭셔리한 저녁 식사를 하는 한국인입니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먹는 즐거움의 소중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음식 준비가 일상이 되면 때때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고민거리가 되기도 한다.




너무 오래되었지만 나도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꽃다운 처녀시절이 있었다. 학교에서 아줌마 선생님들은 퇴근 무렵에 모이기만 하면 저녁 반찬 이야기를 했다. '어제 뭘 해 먹었는데 괜찮더라', '오늘은 뭐를 해서 가족의 한 끼를 해결하나'와 같은. 당시에 나는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선생님들은 늘 끼니 걱정인가 혼자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보니 어느새 나는 그 대화의 중심에서 그녀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민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와서도 이어졌다. 이곳에서 만나는 한국 아줌마들의 대화의 주제도 종종 저녁 반찬 고민으로 이어졌다. 거기에 한국처럼 잘 나오는 급식도 없으니 도시락  메뉴 고민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아줌마들과 저녁 반찬 메뉴 고민을 나눌 시간이 없어졌다.


그런데 어느 나라 주부든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것은 다 같은가 보다. 미국 학교에서 일하면서도 종종 동료들의 대화가 저녁 메뉴로 흘러가는 것을 보곤 한다. 그네들도 오늘은 뭘 만들어야 가족들과 맛있게 먹을까 늘 고민하며 살고 있다.


항상 저녁에 가족들에게  뭘 먹일까 가장 열심히 고민하는 Ms. M이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물었다.

"오늘 저녁에 뭘 먹지? Ms. A, 너는 오늘 저녁 뭐 먹을 거야?"

"감자 구이와 스테이크."

"음~ 맛있겠다."

"제일 간단하잖아. Ms. T, 너는?"

"아마 파스타 해 먹을 거 같아. 수프 끓이고 남은 조개랑 새우를 넣어서."

"오오~ 근사한 저녁이 되겠다."

 Ms. M이 옆에서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Ms. P 너는 저녁에 뭘 만들어 먹을 거야?"

"음... 두부 요리와 미역국을 까 생각 중이야."

음식 얘기가 나오면 항상 궁금해지는 그녀다.

"두부 요리는 어떻게 하는 건데?"

"기름을 프라이팬에 조금 넣고 달군 다음에 두부를 적당하게 썰어서 약간 갈색이 되도록 구워. 타지 않게 조심하면서 약간 노릇해지게. 나는 두부를 굽는 동안 소스를 만들어. 간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양파와 파, 기호에 따라서는 약간 설탕을 넣은 소스를 만들어. 구운 두부에 골고루 얹어서 다시 조금 더 익히기만 하면 돼. 여유가 있으면 잘게 썬 파나 빨간 고추를 얹으면 더 예쁘지"

이야기를 듣던 교실의 동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엄청 Fancy 한 음식이네."

"Ms. P 너는 Luxurious 한 저녁을 준비하는구나. "

"그러게. 게다가 두부는 건강에도 좋잖아."

"와우, 네 가족들은 엄청 럭키하네."

그러게. 사실 매우 평범한 반찬인데 엄청 대단한 요리 같네. 나름 열심히 설명을 하면서 생각했다.

"간단해서 한국인들이 자주 먹는 반찬이야."

"와~ 너는 그걸 자주 먹어? 한국사람들은 럭셔리한 식사를 하는구나."

그리고 그네들은 다른 음식 이야기로 넘어갔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동료들의 말이 떠올라 늘 하던 두부조림을 만들고 있는 내가 왠지 레스토랑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셰프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혼자 쿡쿡 웃었다.

아들이 저녁 반찬을 보더니 "또 두부야?" 했다.

"맛있겠는데."

남편이 두부를 하나 집으며 말했다.

"다들 얼마나 Fancy 한 저녁을 먹는 줄이나 아셔."

내 말에 아들과 남편이 동그레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동료들이 이 두부조림을 얼마나 럭셔리한 반찬이라고 했는지 이야기하면서 나는 럭셔리한 두부조림을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 또 저녁 메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다들 내가 뭘 해 먹는다고 할지 주목했다. 저녁에 신김치나 넣어 간단하게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계획이었다.

"달걀부침으로 싼 김치볶음밥을 하려고."

"What? 볶음밥을 달걀로 싼다고?"

"나 김치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 들었어. 그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작게 썬 양파를 볶다가 햄이나 돼지고기와 김치 썬 것을 넣어서 좀 더 볶아. 다른 채소가 있으면 얼마든지 넣어도 좋아. 좀 매운 것 같으면 설탕을 조금 넣을 수도 있어. 다음에 미리 밥솥에서 익힌 밥을 넣어서 잘 섞으면서 계속 볶아. 싱거우면 간장을 조금 넣으면 맛이 더 좋아져. 그 사이에 프라이팬에 넓게 계란을 얇게 부쳐서 다 만든 김치볶음밥을 적당히 덜어서 얹어. 그리고 조심스럽게 계란으로 감싸서 접시에 담으면 돼. 원하면 그 위에 토마토케첩을 뿌려 먹을 수 있어."

한참을 듣던 동료들이 말했다.

"오오~ 그거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나 나오는 메뉴 아냐?"

"엄청 어려운 요리 같아. 김치가 건강에 좋다던데 그거 웰빙 음식이네."

" Ms.P 너는 항상 대단히 fancy 하게 저녁을 준비하는구나!"

졸지에 럭셔리한 식사를 준비하는 대단한 주부가 되어버렸다. 한국인들이 반찬 없으면 뚝딱 해 먹는 국민 음식 김치볶음밥의 위상이 그런 것인가?


그날 저녁 나는 미슐랭 셰프가 된 마음가짐으로 김치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다. 마땅히 먹을 반찬이 없으면 먹는 김치가 들어간 오므라이스를 우리 가족은 고급 레스토랑에라도 온 듯한 기분으로 먹었다. 늘 먹는 그 아는 맛이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기분 탓이리라.


생각해 보니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음식들이 그것을 먹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조리법을 설명하고 있자니 대단히 특별한 요리같이 느껴진다. 아마도 한국음식은 간단한 것도 여러 번 손을 거치기 때문에 설명이 근사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덕분에 우리 반 동료들은 내가 매일 꽤 럭셔리한 저녁을 준비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그네들은 그렇게 믿는다.


자, 오늘은 또 어떤 럭셔리한 저녁 메뉴를 준비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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