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학급 보조교사가 마주하는 학폭 이야기
넷플릭스에서 화제 중에 방영되고 있는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의 PD가 과거 학폭 가해자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난 몇 주 불타는 트롯맨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황영웅 관련 기사를 여러 번 접하기도 했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무어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이 든다. 학교 폭력 가해자가 만든 학교 폭력 드라마를 시청하고 학폭 가해자가 흥겹게 부르는 트로트를 따라 흥얼거리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만큼 학폭은 너무도 만연하게 우리의 주변에 퍼져있나 보다. 학폭 가해자들은 멀쩡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무런 제약이 없는 시대인가 보다. 학폭의 그늘에서 어두운 시간을 보냈거나 여전히 그 상처를 안고 사는 누군가가 그 사실을 밝히기 전까지는.
학교에 있다 보면 학교 폭력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거나 신고를 하기는 어렵지만 의도가 의심되거나 학폭이 아닐까 염려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두가 보는 교정에서 심한 육체적 폭행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폭언과 놀림도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변호사아들의 지속적인 폭언에 삶이 망가진 학생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미국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끔 교정에서 마주치는 장애를 가진 남학생이 있다. 일반 학급에서 통합 수업을 하고 있어 우리 특수학급 소속은 아니지만 한눈에 봐도 매우 왜소한 체구에 걷는 것이 어색한 장애를 가진 학생이다. 교정을 지나는 그 학생 옆에는 누구라도 훈남이라고 여길 훤칠한 남학생 두세 명이 늘 함께 한다. 우리 반 학생들과 같이 있다가 그 훈남 친구들이 장애 학생의 모자를 빼앗고 도망가는 장면이나 그 학생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키득거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장애 학생은 불편한 몸으로 펄쩍펄쩍 뒤따라가거나 키득거리는 친구들을 향해 좀 특이한 목소리로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적당히 놀린 후 친구들이 그에게 돌아와 모자를 다시 씌워주거나 등을 토닥이인 후 어깨동무를 하고 그 학생의 말투를 흉내 내며 웃으면 그 학생은 친구들을 향해 마주 웃으며 다시 가던 길을 간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나는 그 남학생들이 그 장애 학생의 친구인지 친구를 가장한 채 그 학생을 돕는 척, 같이 어울려주는 척하며 친절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몇 번 내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쳐다보자 그 친구들이 나를 힐끔거리더니 얼른 모자를 돌려주고 그 학생과 같이 웃으면서 지나갔다. 한 번은 좀 걱정스러워 "너 괜찮니?"라고 물으니 그 학생이 괜찮다면서 친구들을 따라갔고 친구들은 노는 거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맡은 학생이 아니고 그 학생도 친구들과 노는 것으로 보이고 싶은 것 같아서 선뜻 나서서 뭐라 하지 못한 채 그런 상황을 만날 때면 잠시 멈춰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그 남학생들이 친구를 가장한 친절한 학폭 가해자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애 학생과 어울려주는 친절함을 가장한 호의와 그 학생의 반응을 즐기는 야비한 재미가 버무려진 그들들의 비열함과 자기와 어울려주는 훈남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은 장애 학생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미묘한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근무하던 시절, 쉬는 시간 놀이터에서 우리 반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친절한 배척이나 따돌림, 놀이를 가장한 놀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이들을 수시로 보곤 했다. 일반 학급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반 아이를 같이 놀자고 부르고 나서 술래만 시킨다던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다른 곳으로 보내고 자기들끼리 놀면서 그 아이가 자기들이 시키는 엉뚱한 짓을 하는 모습을 즐거워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옆 교실 일반 학급에 공기 중 오염물질이나 뉴스에서 본 사고에 대한 불안적 강박증이 있는 아이가 있었다. 우리 반 아이를 데리고 그 반에 통합 수업을 가면 종종 그 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척 다가가서 그 아이가 불안해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교묘하게 그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상황을 만드는 몇몇 아이들이 있었다. 담임이 화를 내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천연스러운 눈짓을 주고받거나 불안증으로 소리를 지며 우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위로하는 척을 하며 웃던 그 3학년 아이들이 내 눈에는 감정적 폭력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수시로 보면서 친구가 없는 아이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처럼 다가와 은근하고 비열하게 친절한 폭력을 행사하는 데는 나이나 인종이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가벼워 보이지만 은근한 폭력은 너무도 일상적으로 주변에서 사소하게 발생하곤 하며 이런 학생들은 학교 폭력 가해자라고 지목해서 처벌을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자신들보다 약자인 아이를 교묘하게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친절한 학폭 가해자들이 어쩌면 더 위험한 건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학생들이 끼리끼리 모여 웃으며 장난치는 활기참이 교정을 채운다. 그 사이에 우두머리가 되어 내키는 대로 말하거나 툭툭 치는 친구 때문에 기분 나쁠 것 같은데 화를 내는 대신 웃는 학생들을 간혹 볼 수 있다. 학폭 관련 기사를 많이 본 탓인지 그런 모습이 장난이 아니고 그 학생들이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우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그저 그 학생들의 웃음이 진심으로 웃는 것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