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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10. 2023

땅에 흘린 닭다리, 5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을까?

미국에서 만나는 미국인들의 요지경 세상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삭한 닭다리를 아차 하는 순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면?

1. 흙과 오염물이 묻었으니 포기한다

2. 후후 불거나 톡톡 털어서 먹는다

3. 오염된 표면을 제거하고 깨끗한 속살만 먹는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먹던 사탕을 흘렸다면? 그것도 언제 세탁했는지 알 수 없는 더러운 카펫에 흘렸다면?

재빨리 후다닥 5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을까?

1시간도 아니고 1분도 아니고 단 5초 안에 주운 거니까?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 있는 2개의 특수반은 각자의 교실 외에 Sensory room(오감 교실)이라는 방을 공유한다.

간식과 점심을 먹는 장소이자 장애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감각을 활성화하고 조절이 안 되는 감정을 발산할 수 있도록 간이 농구대와 실내 운동용 자전거, 실내용 그네, 트램펄린, 요가용 큰 공 등이 비치되어 있다.

우리 특수 학급 보조교사들은 학생들 점심시간을 피해 교대로 돌아가면서 오감교실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점심을 먹으려고 오감 교실에 들어섰는데 옆반 Ms. T와 Ms. V가 도시락을 열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 후 각자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OH, no!"

Ms. T가 아이스크림 쿠키를 한 입 베어 물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순간 Ms. T는 "5 second rule!" 하면서 후다닥 쿠키를 집어 들었다.

"너 그거 먹을 거야? 여기 바닥 카펫은 정말 더러울 텐데..."

안 먹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Ms. T가 그것을 진짜 먹는 게 아닌가 혹시나 염려가 되어 말했다.

그걸 보던 Ms. V가 웃으며 대신 대꾸했다.

"괜찮아. 5초 법칙이잖아."

Ms. T는 윙크를 하면서  바닥에서 주운 아이스크림 쿠키를 입에 쏙 넣었다.

"에? 이게 뭐야? 머리카락이잖아. 우웩! Yucky! Disgusting. "

Ms. T는 찡그린 얼굴로 입에 넣은 것을 쓰레기통에 뱉었다.

그 모습에 우리 셋은 크게 웃었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어느 점심시간, 우리 반 먹보 이튼이 자기가 좋아하는 치킨 너겟을 먹다 바닥에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바닥이 깨끗이 청소되고 실내화를 신고 다니는 급식실이나 교실이 아니라 시멘트가 깔려있는 실외에 있는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튼이 후다닥 그것을 줍길래 쓰레기 통에 버리고 오라고 말하는 순간 그 아이는

"5 second rule!" 하면서 주운 치킨 너겟 조각을 입에 쏙 넣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잠깐 멍하게 이튼을 바라보다 땅에 떨어진 것은 더러우니까 주워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 엄마가 5초 안에 주운 것은 괜찮다고 했어. 그건 5초 법칙이야."

엄마가 괜찮다는 데 내가 어쩌랴 싶어 다시 신나게 나머지 치킨 너겟을 먹는 이튼에게 '한 번 바닥에 떨어진 음식은 병균이나 더러운 먼지가 묻을 수 있으니 안 먹는 게 좋을 거 같다'라고 간단히 덧붙이고 말았다.

'어떤 엄마가 5초 안에 주운 것은 안전하다고 할까?'

당시에 나는 남은 케첩을 손가락으로 열심히 찍어 먹는 이튼을 보며 그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이튼의 말이 사실이라면 바닥에 떨어진 것을 5초 안에 주워 먹는 것은 괜찮다고 가르친 그 엄마의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미국에는 그런 규칙이 실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Ms. T와 Ms. V에게 이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애가 자기 엄마가 5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다고 했다기에 난 그것이 그 집 규칙인 줄 알았어."

당시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어 그 한 조각조차 다 먹고 싶어 거짓말한 거라고 생각까지 했다는 내 말에 두 사람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물로 입을 헹구어낸 후 Ms. T가  말했다.

"Americans are really stupid, aren't they?"

나는 Ms. T가 집에서 그 규칙을 아이들에게 사용하는지 물었다.

"절대 아니야. 우리 집은 개가 두 마리 있어서 바닥이 너무 지저분해. 우리 집에서 떨어진 것 주워 먹기 금지야."

과장해서 백 년도 더 됐을 학교 바닥의 카펫이 Ms. T 집 바닥보다 훨씬 더 더러울 거라는 내 말에 우리 셋은 함께 웃었다.


맛있는 것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아까운데 주워 먹어도 될까?

떨어진 바닥이 그다지 더럽지 않다면, 청소가 된 내 집 안에서 떨어뜨렸다면 주워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도 과자나 빵이 식탁 아래 떨어지면 가끔 주워 먹기도 한다.

그런데 수년을 빨지 않은 카펫이 깔린 바닥이나 학교 운동장에 음식물을 떨어뜨렸다면 어떨까?

1, 2, 3, 4, 5초!

바닥이 아무리 더러워도 5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을까?


이튼이 거짓말을 했거나 이튼 엄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5 second rule'은 미국에 실존하는 칙이었다.

가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을 편의에 의해 타당하게 만들기 위해 억지 법칙을 만들기도 한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5초가 지나기 전에 주우면 깨끗하다는 말은 사실 엉터리다.

'5 second rule'을 적용하면서도 스스로 어리석은 규칙이라고 말하는 Ms. T의 말처럼 말이다.

더러운 것을 엄청 싫어해서 과하게 소독하고 관리하는 미국인들이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면서 5초 규칙을 내세우며 사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유행했던 신신애 씨의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 기억난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고 했던가.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요지경이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지 누가 알겠는가?

사실 바닥에 있는 이물질이 묻은 것을 좀 주워 먹는다고 해도 대부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흙을 주워 먹으며 커야 건강하다고 옛말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토양도 너무 오염이 되어서 흙을 주워 먹으면 유해한 오염물질이 몸에 들어올 수 있으니 흙을 먹고 커야 건강하다는 옛말이 진짜 옛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오늘도 내가 요지경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한바탕 웃었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405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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