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길의 <돈말글>에서 얻은 용기
이제는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굶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던 어느 날, 갑자기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열심히 즐기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행복에 닿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순수한 마음을 책에 담기도 했다. 하지만 바닥난 체력이 내 인생의 장애물이 될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정은길의 <돈말글> 중에서-
교보문고에 들려서 대충 쓱 보다가 훅 들어온 책이 있다.
아나운서 출신의 정은길 작가의 <돈말글>이다. 장기하의 신작을 사러 갔다가 같은 에세이 코너에서 먼저 들어와서 그 자리에서 몇 줄 읽고는 바로 결제했다.
'돈, 말, 글'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인데, 10년간의 회사 생활 끝에 프리랜서로 전향해 1인 기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담고 있다. 현재 내 상황과 비슷해서 그런지 매 문장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나의 심정을 그대로 읽어주는 듯했고,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웠던 부분들을 책으로 공감받았다. '비슷한 상황에서 저 사람은 이렇게 헤쳐나갔구나', '다들 그렇구나'라는 걸 아는 것이 이렇게 큰 안도감과 용기가 될 줄 몰랐다.
얼마 전 나도 작가와 같은 번아웃 증상이 있었다. (프리랜서가 되고 난 후) 평소처럼 주말에 일을 하다가 지쳐서 잠깐 누웠는데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슬퍼서, 기뻐서, 억울해서 그 어떤 감정의 입력도 없었다. 나도 정말 놀랐고 옆에 있는 남자 친구도 놀랐다. 아무리 달래줘도 한 번 나온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를 몰아갔다. 그 날 이후로 몇 개월간 쭉 '다시 회사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과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인데...'라는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브런치에는 '퇴사 후 재미난 일과 인생'에 대해 희망적인 '프리랜서 도전기'에 대해 쓰고 싶었다. 몇 달도 안돼서 감히.. '회사에 가고 싶다', '아니 그냥 일이라는 모든 것을 하기 싫다'라는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거의 접을 생각으로 브런치에 있던 글을 5개월 동안 방치했다가 책을 읽고 용기가 생겨서 그냥 발행했다. (아마도 앞으로의 글들은 '프리랜서 변덕기'가 될는지도...)
혼자서 일하는 건 정말 힘들고 외로운 부분이 많다.
회사 생활의 동료라는 존재가, 점심시간에 대화들이, 주말에 뭐했어 라고 물어볼 수 있는 월요일이..
고작 7개월째인데 벌써 회사 생활의 기쁨과 슬픔은 낭만적인 기억들로 포장되어 버렸다.
내 일이 되었을 때의 무거운 책임감이,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한다는 과도한 욕심들이
사람을 대하는 어려움이, 의논할 사람이 없는 기분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요령이라는 걸 써야 하는 상황들이
자꾸만 다시 이력서를 붙잡게 만들지만...
이것도 경험이라고 오늘은 생각한다. (오늘은 별일 없었기 때문에)
2020년 9월 24일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