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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림 Oct 08. 2020

나의 회사 vs 프리랜서  

회사를 만드는 일에 대하여

날씨가 차가워지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계절 중에는 겨울의 분위기를 가장 좋아하는데, 코트, 연말 영화, 목도리, 크리스마스. 에서 연상되는 따뜻한 정서가 좋다.


올해 회사를 나올 때는 그냥 12월까지만 해보자! 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프리의 특권으로 마지막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몰아서 다음을 생각할 참이었다.


그런데 내년 프로젝트 비딩 제안이 있어서 조금 앞서서 내년을 그려봐야했다.

이건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큰 건이고, 이 기회를 잡는다면 내년에는 회사를 운영하는 기분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민의 방향성이 '프리랜서 vs 회사원'에서 -> '법인회사 vs 프리랜서'로 바뀐 것이다.

나의 주관을 곧게 정하고 그다음 행보를 생각하고 싶은데,, 아직은 상황에 따라 맘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편이다.


그래도 요즘 기분이 좋다. 몇 주전만 해도 힘들었는데 시월들어 뭔가 좀 더 단단해진 기분이다. 성장한 기분이다.

왜 그럴까 곱씹어 보면.


먼저, 나 스스로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알았다.

프리랜서 기획자라는 포지션은 항상 애매하다. (디자이너, 포토, 개발자 등 기술이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항상 이력서 같은데 뭘 잘한다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외주일 땐 견적내기도 어렵다.


그런데 지난 7개월간 협업했던 다양한 회사들에서 나를 찾아주는 포인트, 뭘 믿고 맡기나 라는 포인트를 보고 깨달은 게 있다. 망망대해에 떠도는 아이디어들을 구조화하고 진행하는 스킬이 있다.


기획자로서 맡은 일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콘텐츠나 브랜드 기획에 있어서, 처음 시작할 수 있도록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그 다음 프로세스, 협업 방법, 인력 등을 구성해 일을 추진시키고, 완성이라 할 수 있을 때까지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다. 다들 그것 때문에 나를 찾고,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안 하려고 한다.


나는 그동안 '기획'을 좋아한다 생각했고,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콘셉트이나 아이디어를 잘 떠올리는 사람. 근데 다른 사람들은 물론 '기획'때문도 (일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돈을 안 줬을 것 같다. 내가 페이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진행'때문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일을 맡길 땐 알아서 (자기 마음에 들게) 잘 해주길 바란다.


진행이 어쩌면 '기획'이나 '제작'보다 더 내세울 수 있는 스킬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고, 진행자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작자들이 있어도 일이 안 돌아가거나 산으로 간다. 그러니 나는 희소하고 시장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라는 어떤 반쯤의 확신(?)이 생겼다.



둘째로,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이것을 받아들였다.

기획자는 절대 혼자서 일할 수 없고 항상 팀을 꾸려야한다. 조율이 필수다. 이전 회사에서 경험으로 스태프의 사기를 올리는 게 결과물의 퀄리티를 좌지우지한다는 건 알았는데, 외주로 협업할 때는 그 보다 더 어려운 게 있었다. 모든 팀원들과 금액과 일의 범위를 조율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은 나에게 정말 쥐약이었다.


시작할 때 결과물을 선명하게 먼저 그려주는 기업은 없다. 그냥 잘 예쁘게 그려달라는거다. 그럼 나는 경험에 기반해 상상으로 견적을 짜고 팀을 꾸리고 협업한다. 예상과 실전은 항상 달라서 브랜드와 중간에서 애를 먹는다. 조율이 뭔가 뜻대로 잘 되지 않으니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치밀어오른다. 저지른 말은 있으니 요청하는 일이 어려웠다. 내가 대신해버리거나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 더러 생기고, 그래서 막 억울하고 짜증나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그 부분은 쉽지 않지만, 하나 깨달은 건. 세상에 공짜는 없고, 인하우스랑 외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브랜드와의 계약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일의 범위 그 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부수적 이득 등을 계산해서 금액을 제안하고 협상해야 한다. 그 일은 불편한 일이 전혀 아니며, 조율과 협상과 배려와 이해의 과정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금액 협상에 있어서 아주 조금 나아졌다.


연장선에서 또 힘든 게 있다. 이건 정말 답도 없는 건데, 바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 혹은 내가 이것까지 해야 돼? 즉 일의 양과 질을 비교하고 재는 것이다. 대게는 일을 다 해버린 다음에 드는 생각이다. 그러니 더 짜증이 난다. 결국 답답해서 하는 사람이 손해이니, 나몰라라 하는게 아닐까라는 불신지옥을 낫는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이다. 스스로가 젤 힘들고 젤 고생하고 젤 희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도 나의 기준대로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라고 마음을 다스린다.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반대되는 지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인정받는 건 '진행'이지만, 사실 '진행'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조율'과 '책임'은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난 정말 매번 힘들게 일하고 있었고, 그게 쌓여서 아마 좀 정신이 쇠약해졌던 것 같다.


이대로 계속 상반되는 두 개를 끌고 갈 순 없다. 진행이 싫으면 특정 스킬(예를 들면 카피 등)을 키우거나 회사에 취직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이왕이면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나의 '진행'이라는 능력을 살려서 돈을 짧고 굵게 많이 벌고 싶고, '진행'에 대한 가치를 올려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결정했다. 진행을 하면서 조율하기 힘들어하고, 진행을 하면서 이거까지 내가 해야 돼?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모순이다. 진행을 잘하는 건 조율을 잘해야 하는 거고, 어찌보면 이것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왕 하는 거 기분 좋게 한다. 기분 안 좋은 건 최대한 에너지와 시간을 조금 들여서 짧고 굵게 한다. 그래도 못할 거 같으면 '나의 시간과 에너지 이 일로 얻는 이득과 실'을 계산해서 당당히 돈을 올리거나 위임하거나 범위를 조율하자. 가장 어려워했던 조율, 협상, 설득은 혼자 일을 할수 없는 기획자의 숙명이고 기본 중 기본이다. 잘 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스킬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셋째로, 나는 생각보다 더 멋진 걸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브랜딩 일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여러 번 브랜드 기획자 포지션에 문을 두드렸는데, 그동안의 경력이 이커머스 MD, 콘텐츠 기획자, 홍보기획자 여서 그런지 자격이 애매하게 빗나갔다. 많이 떨어졌고 자존감도 낮아졌었다. 그 이후 다른 방식이지만 서촌에 공간 브랜드도 만들고,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외주로 몇 번의 브랜드 기획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브랜딩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1. 아무리 좋게 잘 만들어도. 소비자 접점에서 잘 전달되지 않으면, 지속하지 못하면 말짱 소용없다.

2. 비즈니스 위에 브랜딩 없다. 브랜드 기획자의 일은 결국 이해관계자들의 생각을 퍼즐로 맞추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비즈니스가 바뀌면 브랜딩 퍼즐을 다시 맞추고 그것의 반복이었다.

3. 결국 가장 좋은 브랜딩은 진정성이다.

4. 생각하는 방식과 취향 결이 맞는 사람들끼리 있으면 브랜딩을 하지 않아도 그것이 브랜딩이 된다. 그러니 브랜딩 방향성을 잘 정하는 것보다 사람을 잘 모으는 게 중요하다.

5. 디자인이나 이미지만이 브랜딩의 영역이 아니며, 모든 것이 브랜딩이 될 수 있고 모든 장르를 브랜딩화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브랜딩에 대한 갈증이 아직 있다.

진짜 나 같은, 내 회사의 브랜딩을 천천히 쌓고 싶은 생각이다.


막연하게 떠오른 문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보통의 이야기를 담는 회사'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홍보나 광고를 하지만 잘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움직이고 싶고, 그 안에서 효율과 데이터 운영 노하우를 챙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브랜드 미디어 구축과 콘텐츠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 첫번째 발신 채널은 다른 브랜드의 미디어겠지만 언젠가 다른 채널이 생기더라도 그 안의 가치나 흐르는 맥락은 '평범한 사람들의 보통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게.


지금까지의 시행착오와 경험 그리고 자격지심들이 뭉쳐 나를 지키는 단단한 키워드가 생긴 느낌이다.

일을 할 때 이 방식이, 이것이 괜찮은 이유를 좀 더 설득하고 싶은 거 같기도 하다.


내년에 거처가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내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상상도 안 가고, 대표라는 직함은 두려워서 영원히 따로 또 같이 일하면서 행복과 신뢰를 거머쥘 수 없을까 고민하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반면에 기존의 비즈니스 질서가 흔들리는, 변화무쌍한 시국이라서.

어찌 보면 다른 시선으로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이런 행복 회로를 그리면서 새벽 한 시까지 잠 못 드는 지금이 참 좋다.

겨울이 다가와서 더 좋다.


2020년 10월 8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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