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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Nov 18. 2020

제발 눈썹 문신 좀 하라는 엄마

엄마가 나에게 정말로 바라는 것

딸,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외모에 무심하니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밤새 엄마에게서 카톡이 도착해있었다. 열 줄도 넘는 긴 메시지였다.

 

"엄마가 어제 모임에 갔는데, 한 달만에 보는 친구가 너무나 예뻐져 있더라. 처음에는 뭐가 달라졌는지 몰라 모두들 어리둥절했는데, 알고 보니 눈썹 문신을 한 거더라. 내가 그 문신하는 곳 장소랑 연락처 다 알아놨다. 지난번에도 내가 눈썹 문신하라는 거 말 안 듣더니. 딸,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외모에 무심하니. 이번에는 제발 너도 눈썹 문신을 했으면 좋겠다."


눈 뜨자마자 기분이 홱 나빠졌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한참을 뒹굴고 뒤척였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짜증을 내고도 싶었지만, 옆의 남편이 신경 쓰이기도 했고 아직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을 이른 시간이었어서 꾹 참았다. 나는 간단하게, “싫어”라고 답을 보냈다.




외모 문제로 엄마와 실랑이를 벌인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몇 주 전 엄마는 딸에게 한우 꽃등심과 아보카도를 전해주러 동네로 찾아오셨다. 나는 엄마가 미리 보내준 도착 예정시간에 맞춰 역으로 나갔다. 역 안 교통카드를 찍는 개찰구는 엄마와 나의 ‘만남의 장소’이다. 엄마는 지하철비를 아끼기 위해 잠시 앉아 있을 벤치도 없는 개찰구 안쪽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나는 그 바깥에서 엄마와 조우한다. 엄마는 을지로나 영등포, 마포 등 우리 집 근처에서 볼 일이 생길 때마다 연락을 했고, 우리는 이곳에서 소소한 물물교환을 진행했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남편이 대량으로 구입해준 KF94 마스크, 엄마가 시골에서 손수 따온 산딸기, 내가 만들고도 맛있었던 갈비찜 등이 오고 갔다. 내가 휴직을 신청한 이후부터 엄마와 나는 친정집도 우리 집도 아닌, 이 지하철 개찰구에서 제일 자주 만났다.


그날 나는 씻지도 않은 채 야구모자를 쓰고 추리닝 바지에 남편의 커다란 후드티를 입고 지하철에 나가서 엄마로부터 꽃등심과 아보카도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딸. 방금 옷차림이 너무 추레하던데, 혹시 집에서도 그렇게 편하게만 있는 건 아니지?”

“나 집에서도 그냥 이렇게 있는데. 지금 입고 있는 바지는 동네 외출용, 집에서는 색깔만 다른 거 하나 더 있어.”

“아, 딸. 집에서 좀 예쁘게 하고 있으면 안 돼? 사위 퇴근하고 들어올 때 그래도 화장도 하고 있고, 옷도 좀 깔끔한 걸로 사서 입고. 필요하면 엄마가 홈웨어 여성스러운 거 좀 사줄게.”

“집에만 있는데 무슨 화장이야.”

“그래도 남편한테 예쁘게 보여야지. 네 남편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하면서 화장하고 잘 차려지게 입은 여자들 보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네가 그렇게 꼬질꼬질하게 있으면 너를 여자로 보겠어?”


그래도 남편에게 예쁘게 보여야지


내가 예쁜 것, 정확히는 남편에게 예쁘게 보이는 것, 그건 엄마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대부분 한 귀로 흘려보낸다. 응응, 하고 그냥 말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하고 싶은 말을 참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엄마에게 길게 내 주장을 펼친다. 이 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엄마, 오빠는 나보다 더 편하게 입고 있어. 오빠도 나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던 거 뻔히 아는데 갑자기 화장을 하면 그게 더 우습지. 그리고 츄리닝 이거 오빠랑 커플로 산 거고, 오빠와 함께 고른 거야. 오빠는 집에서 레이스 원피스 프릴 달린 원피스 이런 거 취향 아니래. 그리고 엄마 왜 나한테만 예쁘라고 말하는 건데. 엄마 딸 그냥 생긴 대로 살고 싶어. 엄마 나한테 예쁘게 있으라고 말할 거면 오빠한테도 전화해서 집에서 잘 차려입고 있으라고 딸에게 늘 잘생겨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해.


설움이 복받친 하소연에 질렸는지, 엄마는 알겠다고 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우리 할머니는 굉장히 털털했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번도 할머니를 여자로서 아껴주지 않았다. 내가 할아버지네 댁에 놀러 갈 때마다, 동글동글한 할머니는 늘 펑퍼짐한 몸빼바지를 입은 채 실 없이 웃으며 끊임없이 말을 하셨고,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에게 "여편네 조용히 좀 해"라며 짜증을 내곤 했다. 세련되거나 우아하지 않고 늘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너그러웠던 할머니. 엄마는 나에게서 할머니의 성격이 엿보인다고 했다. 엄마의 걱정은, 내가 남편으로부터 '여자'로서 사랑받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이성적으로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엄마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편에게서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으며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예쁘지 않다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면, 그런 남편은 필요 없다고.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절반은 거짓말이다. 남편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남편이 나를 지루해하거나 여자로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남편을 버리기는커녕 엄마 말대로 집에서 화장을 하기 시작할 종류의 사람이라는 걸 안다. 엄마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내가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엄마 눈에는 이미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엄마는 내 외모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정말로 바라는 건,
엄마 품을 떠나 새 가족을 시작한 내가 듬뿍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모르는 일도 있다. 그런 괜한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걸. 눈썹 문신 없이도 집에서 화장을 하지 않고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을 입고서도 나와 남편은 매일 재미나게 잘 놀고 있다는 걸. 연달아 회식에 야근에 운동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남편의 배가 불룩 튀어나와도 내 눈에는 사랑스럽기만 하다는 걸. 꼭 부부가 매일 이성적으로 두근두근하며 긴장감 느끼지 않아도, 서로를 충분히 아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열 시쯤 카톡을 다시 확인해보니, 내가 보낸 '싫어' 옆에 숫자 1이 사라져 있었다. 엄마는 메시지를 확인 후 따로 답장을 하지 않았다. 성의 없이 보낸 두 글자에, 엄마도 기분이 많이 상하셨겠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내 외모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눈썹 문신 안 해도 엄마 딸은 남편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어'라고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비록,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 '그깟' 눈썹 문신 한 번 하겠다는 착한 딸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차선은 엄마에게 딸이 행복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고 들려드리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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