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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Aug 30. 2020

웃는 얼굴이 안 예쁜 사람도 있다

너는 웃을 때 더 이뻐.

- 거짓말.


웃을 때 못생겨지는 얼굴도 있다. 나는 내 웃는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웃을 때 눈은 작아지고, 입꼬리는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올라가 삐뚤해지고, 팔자주름은 선명해지고, 코가 찡긋하며 콧등에 이상한 주름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 때부터 셀카를 찍을 때 늘 무표정한 얼굴, 혹은 아주 살짝 입으로 미소만 지으면서 찍고는 했다. 내가 입을 벌려 크게 웃을 때 누군가 나 몰래 내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는데, 나는 그 사진들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삭제해버렸다. 그래서 내 옛날 사진들 중에는 내 웃는 얼굴이 거의 없다.


내가 크게 웃을 때 못나 보인다고 말해준 건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서는 간도 쓸개도 심장도 내주실 분이지만,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가끔은 나의 삶에 지나치다시피 개입하기도 했다. 엄마는 딸이 늘 이쁘게 크기를 바랐다. 그래야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을 거라고. 내가 유치원 때, 워낙 내성적이라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고 맨날 혼자서 노는 걸 알게 된 엄마가 우리 반에서 가장 착해 보이는 여자애를 골라 그 애 엄마에게 찾아간 적으 있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당신 딸과 우리 딸이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 애를 많이 쓰셨다.


어릴적부터 엄마는 친구관계에 영 서툰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를, 밖에 나가서도 사랑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딸의 외모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너무 크게 웃으면 못생겨지니까 그럴 땐 손으로 입을 가리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동안 나는 웃을 때 더 이뻐지는 친구들을 몇 명 만났다. 그중에서도 회사 입사 동기는 웃는 얼굴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많은 자신감 넘치는 남자들의 고백을 받고 용기 없는 남자들의 짝사랑 대상이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다소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인상인데, 웃을 때 눈이 반달눈이 되고 도톰한 입술이 길게 찢어져서 매력이 증폭하는 얼굴이었다. 그 친구는 시시때때로 웃었다. 웃을 때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기 때문에. 나도 종종 친구 옆에서 함께 웃었지만, 매력을 발산하고 싶은 자리에선 너무 크게 웃지 않고 살짝만 미소 지으려고 노력했다.


이쁜 얼굴은 뭐고 안 이쁜 얼굴은 뭘까. 나는 아름다움은 상대적이다 라는 말을 반만 믿는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그 시대와 그 사회에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얼굴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얼굴은 분명히 있다. 사람 눈은 다 다른 거니까, 라는 말로 내 얼굴이 수지나 아이린보다 아름답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봐도 나는 웃지 않을 때 얼굴이 웃을 때 얼굴보다 잘생겼다. 그런데 이쁘고 잘생긴 게 그렇게 중요한가?


글을 쓰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웃는다. 왜 웃냐고 물어보니까 함께 모여라 동물의 숲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이 카톡 단체 창에 귀여운 이미지를 하나 보냈다고 한다. 나와 남편도 무척 좋아하는 주민(캐릭터) 부캐가 한 손에 강아지풀을 들고 돌아다니는 GIF 이미지다. 내가 글을 쓰거나 책을 쓸 때 남편은 옆에서 종종 크게 웃는다. TV의 예능프로그램이 재밌어서, 핸드폰으로 웃긴 유머 게시글을 봐서, 모여라 동물의 숲의 캐릭터들이 너무 귀여워서. 남편이 나와 함께 놀다가 즐거워서 웃은 게 아닌데도, 옆에서 남편이 웃는 걸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이 웃을 때 나까지 웃게 되는 건, 남편이 웃을 때 더 잘생겨서가 아니라(물론 내 남편은 웃을 때도 잘생겼다) 그냥 남편이 웃는 게 나도 좋아서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웃었으면 하는 건, 그들이 웃는 게 좋아서지 그들이 웃을 때 더 예뻐서, 더 잘생겨서가 아니다. 내가 웃을 때의 얼굴이 더 예뻐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웃을 때 같이 웃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 나도 내가 예쁜지 안 예쁜지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무조건 많이 웃을 걸 그랬다.


웃는 게 더 이뻐서 많이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즐거우니까 많이 웃어야지. 얼굴아 더더더 못생겨져라. 내가 더더더 행복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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