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태어난 아이는 더위에 강하고 겨울에 태어난 아이는 추위에 강하다?
과학적 근거 따위는 전혀 없는 이 말은 적어도 우리 부부에는 꼭 들어맞는다. 6월에 태어난 나는 땀이 거의 나지 않는 편이고 더위도 크게 싫어하지 않는다. 햇빛에 살이 탈 것만 같이 뜨겁거나 습한 날이라면 조금 곤란하지만, 한여름을 제외한 적당한 더위에는 간단한 산책도 즐기는 편이고. 이와 같은 열에 대한 포용성은 기온뿐만 아니라 온도에도 해당이 되는데, 예컨대 나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지지는 것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1월에 태어난 남편은 나와 정반대로 여름에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셔츠가 흠뻑 젖어있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다. 집에선 무조건 에어컨을 서늘할 정도로 틀어놓고 컵에 물을 따라 마실 때는 잔의 절반 정도를 얼음으로 채워야 한다. 대신 추위에는 꽤 강한 덕분에, 연애 시절부터 겨울에 내가 조금이라도 추워하면 흔쾌히 자신의 겉옷을 나에게 내어주고는 했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게 딱 겨울이라, 내가 그 모습에 홀딱 반했더랬지.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남편도 충분히 추웠을 텐데, 그걸 그대로 받아 입는 것이 이기적인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작은 체구가 아님에도 남편이 선뜻 벗어준 패딩은 언제나 나의 겉옷보다 컸고, 그 안에서 나는 따뜻해진 것도 따뜻해진 거지만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괜히 설레고 두근거리고 그랬었다.
우리가 만나고 반년이 지났을 때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우린 여름에는 야외 데이트를 거의 하지 않았다. 여의도 IFC, 코엑스몰, 영등포 타임스퀘어처럼 실내이면서도 크고 넓은 곳만 골라 다니며 우리는 데이트를 했고, 밖에 나와서는 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그래서 몰랐다. 더위를 향한 남편의 '유난스러움'을.
연애를 시작한 지 일 년 만에 결혼을 했고, 또 반년이 지나 부부로서의 첫여름이 찾아왔다. 아직 에어컨까지 켜는 건 이른 것 같아 선풍기를 틀기 시작했을 즈음부터, 남편이 스킨십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같이 티비를 보다가 내가 팔짱이라도 끼려고 하면 "아 더워", 다리를 베고 누우려면 "미안한데 더워",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더운데 조금만 떨어져 줄래"라고 했다. 한창 신혼 때였는데 이런 날벼락같은 접근 금지 명령이라니. 나는 조금 서운했지만 남편이 원하는 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었다.
그렇다고 그만큼 남편과 소원해진 건 아니다. 내가 삐진 척 확 방 반대편으로 가버리면 (신혼 초에는 원룸에 살았기에 화가 나거나 싸워도 도망칠 방이 없었다) 남편은 1m 정도의 거리를 띄운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곳에 앉아 있어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남편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더웠고 진심으로 거리가 필요했고, 그러나 같은 공간에 있고 싶어 했다. 그리고 결혼하고 5년째, 여름마다 지켜야 하는 우리의 '적정 거리'는 습관이자 일상이 되었다. 물론 내가 늘 장난과 함께 남편의 영역을 침범하긴 하지만. 더워서 이불도 안 덮는 사람을 확 껴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틈날 때마다 손가락으로 남편의 팔이나 다리, 어깨 등을 찔러보고는 한다.
그러다 하루, 남편과 나는 사촌 오빠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 공기가 물을 잔뜩 머금었던, 나조차 기분 나쁠 정도로 습한 날이었다. 식장은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었지만 한창 도로가 막힐 점심 시간대라 내비게이션은 예상 소요 시간 1시간 10분을 찍었다. 이조차도 거리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을 터였다. 우리는 지하철을 선택했다. 식장은 지하철 역에서 조금 걸어가야 했다.
그때는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는데, 우리는 여느 여름날마다 그러듯 그날도 손을 잡지 않고 걸었다. 말도 한마디 하지 않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데 집중했다. 더위를 그나마 덜 타는 나는 시원한 여름 원피스를 입었지만, 남편은 아래 위 정장을 차려입은 상태였다. 역에서 나와 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고작 십오 분쯤을 걸었지만 체감 상으론 한 시간을 걸어온 것 같았다.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마냥 실내의 에어컨 바람 아래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남편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끝난 후에도, 가족과 친척들이 볼까 봐 신경이 쓰였던지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는 길 내내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았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사이 몇 시간이 흘렀지만 공기는 여전히 무겁고 축축했다. 맞잡은 손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어느덧 결혼 오 년차 부부에 들어섰다. 나는 아직 아이가 없으면 신혼부부인 거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는데 그럼 신혼부부의 요건은 뭘까. 신혼부부의 의무, 조건, 책임 같은 게 있다면 혹시 스킨십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최소한 여름 동안에는 신혼부부가 아니게 된다. 앞으로 매년 여름이 길어진다는데, 걱정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여름에 손을 잡지 않고 집 안에서조차 거리 두기를 하는 우리 부부가 퍽 유난스러움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우리 빼고 다들 한여름에도 꼭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것이 혹시라도 밝혀진다면, 나는 그 사실을 캡처라도 해서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남편에게 써먹을테다.
남편, 내가 오빠를 위해서 스킨십 꾹 참고 있는거 알지?
내년 여름에 코로나가 잠잠해진다면, 그때는 서울보다 더 시원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