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관대한 인연들에 관하여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회사 친구가 있다. 한 때는 회사 밖에서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지금은 회사 내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모른 척하며 눈길을 피하게 되는 사이가 됐다.
내 결혼식 한 달 전, 나는 당시 다른 층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찾아가 곧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밥을 한 번 사겠다고 이야기했다. 약속한 당일, 친구는 급한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식사 자리를 피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로 찾아가 종이 청첩장을 건넸지만, 결국 그녀는 결혼식에 참여하지 않았을뿐더러 축의금도 보내지 않았다. 그 후로 나도 그녀도 서로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다른 동료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은 건 그로부터 반년 후였다. 그녀도 그새 결혼식을 올렸고, 막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답례품을 돌렸단다. 그 동료는 다른 이야기도 함께 전해주었다.
원래는 그 친구가 나보다 먼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 날짜는 나의 결혼식과 며칠 차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사유로 인해, 그녀는 파혼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예식만 몇 개월 미루기로 했고, 반년을 기다려 이제야 겨우 식을 올리게 되었다는 사정이었다. 코 앞에 둔 식을 취소하고 오래된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고민하는 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갔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결혼을 축하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식에 참여하지는 못할지언정,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모른 척하며 나와의 지난 시간들을 무효화해야만 했을까. 그녀의 마음을 겨우 이해하게 된 건, 그 후 오 년이 지나서였다.
나는 결혼을 하고, 별도의 피임 기간 없이 바로 임신을 준비했다. 그러나 마음처럼 되지 않아,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과배란을 시도하고 열세 번의 시험관 시술을 받는 시간 동안 정말이지 많은 친구들이 주변에서 결혼과 임신, 출산의 과정을 겪는 걸 지켜보았다.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가 둘째를 임신하고, 나보다 늦게 임신을 준비한 친구가 첫째를 출산하고, 나보다 늦게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친구가 시험관 시술에 성공했다. 삶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쳤다.
백 개도 넘는 임테기에서 선명한 한 줄을 확인하고, 실망하고, 열두 번의 시험관 시술에서 단 한 번의 착상도 없이 실패하고, 울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축하를 건네야 했다. 와, 임신했어? 너무 잘됐다! 축하해! 어떨 때는 카톡으로 폭죽을 터트리는 이모티콘과 색색의 하트를 덧붙이며 인사를 건넸고, 어떤 날에는 친구의 얼굴을 마주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이루지 못한 일을 너무 쉽게 해낸 것만 같은 친구들에게, 내 마음을 힘껏 숨겼다.
'임신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친구가 임신했다고 해서 내가 임신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든 것도 늘어난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임신과 나의 임신은 별개의 일이며, 누군가의 행복과 나의 불행도 별개의 것이다'
라며 스스로를 세뇌했다. 그럼에도 힘들 때는, 자신의 불행에 휩싸여 내 결혼식을 축하해주지 못했던 옛 친구에게 내가 얼마나 서운했었는지를 상기했다. 나는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위선인지 가식인지 노력인지 모르는 축하를 매번 애써 쥐어짜 냈다.
결국 한계가 왔다. 시험관 시술 4년 차에 들어섰을 때, 더 이상 연기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거부 반응이 왔다. 난임 휴직을 내서 인간관계를 최대한 피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어쩌다 누군가의 임신 소식이 들리면 팔다리가 제일 먼저 얼어붙었다. 남편이 출근한 시간, 아무도 없는 방구석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입사 동기가 인스타그램에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올린 걸 보고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누르지 않은 게 신경이 쓰여, 2주 동안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쉬었다. 친구가 단톡방에 임신 소식을 올렸는데, 나 혼자 아무 말도 쓰지 않았다. 축하를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는 티라도 내고 싶어서 - 카톡창에 숫자 1을 남겨두기 위해 - 그 후의 메시지들을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 출산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침묵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 행복을 나는 외면했다.
ㅁ갸어아라ㅏ라라차ㅏㅊㅅ
ㅠㅠㅠ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미처 출산을 축하해주지 못한 친구 한 명에게 조심스럽게 나의 임신 소식을 드디어 전했을 때, 친구는 ㅁ갸어라ㅏ라라차ㅏㅊㅅ 라는 외계어로 나에게 답했다. 놀라고 기쁜 마음에 의미 없이 되는 대로 친 타자였겠지만, 메시지의 마음은 분명히 전해졌다.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는 울고 있었다. 40분 간 이어진 통화에서, “고생했다”, “축하한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들었다. 나도 함께 울었다. 고마워서, 그리고 너무 미안해서.
그동안 내가 어쩌면 부러움 잔뜩 섞인 축하를 건넨 친구들과, 내 마음이 지쳤다는 핑계로 아무런 축하도 전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모두 나의 임신을 축하해줬다. 카톡으로 진심을 표현해준 친구들도 있었고, 바로 전화를 걸어와 함께 울어준 친구들도 있었다. 쉽게 부러지지 않는 좋은 인연들이 나에게 있었다. 그들에게 축하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찡하고 따스해졌다. 말 한마디의 힘이 이렇게 큰 거였구나.
임신을 하고 축하를 받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더 진심으로, 더 힘차게 축하해주지 못한 모든 순간들이 다 후회로 남는다는 걸. 동시에, 그렇게 후회가 남을지언정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친구들의 임신을 기뻐해 주지는 못했을 거란 것도. 어떨 때는 감정이 모든 걸 압도해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기에 어떤 후회는, 예고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상대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할 수 없는, 그럼에도 우선 나 자신을 먼저 돌보아야만 겨우 견딜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은 나에게도, 나와 가까운 누군가에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파혼 직전까지 갔다가 결혼식을 올렸던 회사 동료에게도, 오랫동안 임신이 되지 않아 마음이 가라앉았던 나에게도 찾아왔듯이. 그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반드시 지나간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을 때, 미안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겠어도 용기 내어 다시 다가가고, 서운해서 피하고 싶어도 한 번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다정한 용서가 가능한 그런 관계들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