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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Jul 11. 2024

살다 보면 생기는 예기치 않은 일

‘딩동!’

 아침 일찍 초인종이 울렸다.

 밖에 경비아저씨가 서 계셨다.

 “23층에 사장님이 쓰러져 계세요. 빨리 가보세요.”

 그가 출근한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는데, 23층에 쓰러져 있다는 경비아저씨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뾰족한 불안감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아들을 깨워서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빨리, 빨리!’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불과 몇 초의 짧은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지구 반대편을 가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부디 경비아저씨가 잘못 봤기를 간절히 바라며 23층으로 올라갔다.

 23층 엘리베이터 앞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은 그가 분명했다. 다행히 아직 맥박은 뛰고 있었다. 

 “여보, 정신 차려 봐. 눈 떠 보라고!”

 나와 아들은 그를 안고 애타게 불렀다.

 곧이어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그의 얼굴에 산소호흡기를 장착했고, 응급차는 빠르게 병원으로 달렸다. 


 “심장이 멈췄습니다.”


 아직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인데, 구급대원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득했다. 구급대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구급차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의사들 서너 명이 힘겹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그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나는 이 상황이 믿을 수 없어서 그의 얼굴을 감싸 안고 연신 도리질을 했다. 

 “이건 반칙이야.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아빠, 얼른 일어나!”

 아들이 울부짖었다. 

 그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던 그는 불시에 전혀 예고도 없이,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뭐가 급해서 그렇게 급작스럽게 간 건지. 뭐가 급해서 우리에게 말 한마디 못 하고 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간 건지. 


 영안실 직원이 다가와 빈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을 빼앗겨 넋을 잃은 나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빈소를 꾸미는 서류에 사인하고, 그의 사진을 골라 영정 사진을 만들고, 문상객을 받아야 했다. 

 얼떨결에 상주가 된 나와 아들은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손님들을 맞았다. 

 갑자기 노란 별똥들이 눈앞에 흩어지며 어지럽다고 느끼는 순간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깨어나 보니 팔뚝에 링거줄이 꽂혀있었다.

 빈소에 온 친척들과 지인들은 놀란 얼굴로 황급히 들어와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그들은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말도 안 돼, 라며 울부짖었다. 

 그는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가 어디서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는 죽은 게 아니라, 나를 놀려 주려고 몰래 숨어 있다가 짠!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손님들이 물밀듯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한꺼번에 많은 손님을 정신없이 맞았고, 일일이 손님들을 대하느라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손님들이 그의 사인을 물어올 때마다 매번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거였다. 그가 아침 출근길에 쓰러져 갑자기 응급실로 오다가 변을 당했다는 이야기. 이틀이 넘도록 그의 사인에 대해서 똑같은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은 고문받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처음 듣는 얘기겠지만,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할 때마다 갑자기 숨진 그의 고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발인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눈발이 흩날렸다. 눈송이들은 내리기가 무섭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눈은 하늘에서만 내리는 게 아니었다. 땅에서도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거리는 금방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식구들은 집에 오자마자 바닥에 널브러졌다.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간 3일간이었다. 피로감과 함께 온몸이 욱신거렸다. 손 하나 까닥하기 싫었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했던 그가 그 시각, 왜 하필 남의 집 앞에 쓰러져 있었던 걸까? 그것도 전혀 생뚱맞게 23층 앞에서.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경비실에 내려가 그날 아침 그가 출근하는 장면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경비아저씨가 틀어주는 CCTV 영상을 지켜봤다. 

 그날 아침 7시 30분경 그가 집 앞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가는 모습이 비쳤다. 그러다가 그가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나간 지 40분 정도 흐른 뒤였다. 몸에 이상증세를 감지한 건지 그가 출근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혈색이 좋지 않았다. 찡그린 얼굴로 가슴을 움켜잡고 서 있더니 갑자기 픽 주저앉았다. 겨우 엘리베이터 난간을 붙들고 다시 일어났지만,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곧바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쓰러져가면서도 한사코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일어나려다가 주저앉고, 일어나려다가 주저앉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그는 그렇게 의식을 잃어갔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누가 같이 타기라도 했었더라면 그때 구조요청이라도 했을 텐데. 그랬다면 황금 시간을 놓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엘리베이터엔 아무도 타는 사람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는 사력을 다해 엘리베이터 밖으로 기어나갔다. 바닥에 쓰러진 자세에서 23층 현관문을 발로 쾅쾅 찼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그는 왜 23층으로 올라갔을까? 나는 그때까지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CCTV는 그가 엘리베이터 문을 나와, 23층 문을 발로 차면서 끝이 났다. 엘리베이터 안엔 CCTV가 있었지만, 현관 복도엔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23층으로 올라갔다. 23층 주민 말에 의하면, 그날 아침 누가 문을 쾅쾅 차는 소리가 났다는 거였다. 밖으로 나와 본 23층 주민이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경비실에 연락했고, 119에 신고를 한 거였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확인했다. 우리 집 바로 위 버튼이 23층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 집 버튼을 누른다는 게, 바로 위 버튼인 23층을 눌렀던 거였다. 그는 23층이 우리 집인 줄 알고 문을 두드렸겠지만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23층 버튼을 누르지 않고 제대로 우리 집 버튼을 눌렀더라면 그는 살 수 있었을까. 그가 제대로 우리 집 버튼을 누르고, 우리가 현관문 차는 소리에 바로 나갔더라면 좀 더 빨리 시간을 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게 어긋나고 꼬여버린 시간이었다. 그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나중에 그를 만나게 되면 그는 아마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때 왜 그렇게 안 나왔어? 도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라고.

 그의 장례식을 치른 후, 집안은 물에 잠긴 도시처럼 정적이 흘렀다. 남은 식구들은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들처럼 말이 없었다. 

 나는 우울감에 잠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지냈다.

 아들은 자고 일어나면 맨 먼저 안방 문을 열어 나의 동정부터 살폈다. 나는 잠들어 있는 모습 그대로, 아들이 들어와도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들은 내 얼굴 가까이 귀를 대고 내 숨결을 확인했다. 

 첫 직장에 취업하고 몇 달 안 된 사회초년생 아들은 아침 일찍부터 직장에 나갔다. 아직 회사 일도 제대로 적응 못한 상태에서 장례식까지 치르느라 힘들었을 텐데도 그런 내색 않고 도리어 나를 살피며 위로했다. 쉬는 시간 틈틈이 전화해서 밥은 먹었는지, 기분은 어떤지 물었다. 갑자기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전화와도 받기가 싫어서 휴대 전화기를 꺼놓을 때가 많았다. 전화기를 꺼놓은 채 연락이 안 되는 엄마가 불안한지 아들은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아들은 아침에 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누워있는 나를 부둥켜안았다. 

 “엄마, 일어나! 날 봐서라도 힘을 내. 아들 봐서라도.”

 아들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대고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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