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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낯선 아이(1)

by 정윤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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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 중에도 선우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선우가 병원엔 무사히 도착했는지, 가는 동안 반항하진 않았는지 신경이 쓰였다.

수업이 끝나고 야간 자율 학습실로 향했다.

매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교실로 돌아왔을 땐 벌써 창가가 어둑해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피로가 밀려오는 몸을 억지로 추스르며 과목 요점들을 암기했다. 이제 정말 막바지 확인 단계만 남은 것 같았다. 선우 입원 생각과 암기 내용이 엉켜 들었다. 선우가 왜 그런 병에 걸렸는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언제부터였는지.  


언젠가 인터넷 검색창에서 조현병의 원인을 찾아봤다. 조현병의 원인은 아직 의학계에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전두엽에 이상이 생겨 호르몬 분출이 불규칙하게 되는 병인데,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그걸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백신을 맞거나 미리 예방할 수 있을 텐데. 수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데도 확실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선우가 걸린 조현병은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유전적인 요소도 없다고 했다. 누가 잘못해서 생긴 병도 아니다. 문제는 증상이 악화하면 가족도 감당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는 방법밖에.


조현병 환자가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티브이에서 보도되는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행각은 사람들에게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심을 극대화했다. 선우가 처음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우리 식구들은 이를 은폐했다. 친척들도 선우가 조현병이라는 것을 여태 알지 못한다. 조현병은 죄가 아닌데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었다. 선우에게 입원을 권유해 본 적이 있었다. 선우는 ‘내가 미치지 않았는데 왜 정신병원에 입원하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생 선우를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을 단 하나의 캐릭터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 선우의 병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어쨌든 조현병은 선우 인생의 몫이다. 냉정하고 야멸차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고 1이 되자 선우는 점점 낯선 사람으로 변해갔다. 말이 없어졌고 웃음을 잃어갔다. 얼굴엔 어둡고 우울한 그늘이 서려 있었다. 선우가 조현병이라는 걸 알고 난 후부터 나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올 수 없었다. 오히려 혹시라도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 쉬쉬하며 전전긍긍했다.     


학원 끝나고 집에 오니 예상대로 선우는 없었다.

누워있는 엄마에게서 선우 입원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착잡했지만,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입원은 최선이었다. 선우 때문에 엄마는 물론이고 가족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 같아 그동안 불안했다. 선우가 입원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엄마가 이제는 선우 때문에 시달리지 않게 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마는 안방에 있고 아빠는 선우 방에 있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집에서 수험생 대접도 받지 못했다. 야자를 마치고 늦게 집에 들어오면, 다른 엄마들은 간식을 갖다주고 수험생 눈치를 본다는데 그것까지 바라는 건 사치였다. 선우 때문에 항상 나는 뒷전이었다. 엄마는 이미 선우에게서 기력이 다 소진된 상태였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이겨내고 꿋꿋하게 버틸 거라 나를 믿고 있는 엄마도 부담스러웠다.


나는 조용히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컵에 따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습관처럼 책상 위의 유리병 속 달팽이를 들여다보았다. 아침엔 움직이지 않고 잠만 자던 달팽이가 더듬이를 길게 빼고 꼼지락거렸다. 이제 서서히 먹을 준비를 하기 위한 워밍업이 시작된 듯했다.

나는 날마다 방에 불을 끈 채 손전등을 켜고 달팽이를 지켜보곤 했다. 조금씩 움직이면서 야금야금 사라지는 채소 이파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게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녀석은 잎채소 위에 올라앉아 야금야금 채소 끝을 갉아먹었다. 먹이를 뜯어먹을 때는 끊임없이 더듬이를 이리저리 흔들고 씰룩거렸다. 달팽이를 알아갈수록 점점 호기심이 생기고 정감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선우의 달팽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달팽이 집인 유리 용기에는 덮개가 없었다. 통풍을 생각해서 열어둔 거였는데 그 틈으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달팽이가 어디에 있는지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달팽이는 없었다. 유리병 안에 있으면 먹이도 받아먹고 편할 텐데, 선우 달팽이는 안전한 집을 두고 왜 나갔을까. 선우의 조현병이 발현되던 지점이었는지 그 전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지진이 나면 불행을 감지한 생쥐나 동물들이 자취를 감춘다는데, 불행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듯 사라져 버린 선우의 달팽이. 그 달팽이의 행적이 미스터리였다. 내 달팽이는 그대로 잘 자라고 있는데 선우 달팽이는 어디로 간 걸까.


선우는 어릴 때부터 공부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한 형젠데 어찌 그리 다르냐며 의아해했다. 선우는 공부에 흥미가 없고 그림 그리기만 좋아했다. 그림 솜씨는 뛰어나 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곤 했다. 급기야 전국대회에 나가서도 대상을 받았다. 다른 학원은 가기 싫어하면서 미술학원은 재밌어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선우는 미술학원에 다녔다.

엄마는 논술학원을 운영하느라 밤늦게야 들어왔다.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된 아빠도 늦게 들어오긴 마찬가지여서, 집엔 선우와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 탓인지, 나를 맡았던 담임이 선우를 맡게 되는 경우가 두 번이나 있었다. 중학교에서도 내 담임이었던 선생님이 선우 담임이 되었다.


나는 걸핏하면 담임한테 호출돼서 동생 좀 잘 챙겨라, 는 말을 들었다. 숙제를 안 해 오면, 숙제 좀 챙겨줘라.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으면 네 준비물 챙길 때 선우 것도 좀 챙겨줘라. 준비물을 챙겨주기 위해 알림장을 찾으면 선우는 아예 아무것도 적어 오지 않은 날이 많았다. 알림장은 맨날 텅 비어있었다. 달리 챙겨주려야 챙겨 줄 것이 없었다.

"넌 반장이고 공부도 잘하는데 선우는 왜 그러는 거냐."

담임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잦다 보니 선우가 지겨워졌다. 형인 나에게 왜 그렇게 대들고 미운 짓만 하는지, 선우라면 지긋지긋했다. 될 수 있으면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순간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선우는 어릴 때부터 친구가 없었다. 친구가 없는 선우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더구나 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선우는 꼭 끼려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선우를 끼워주지 않으려고 갖은 핑계를 댔다. 그걸 본 친구들이 도리어 선우와 같이 놀자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긴 하지만, 선우는 그 분위기에 전혀 맞지 않은 말과 엉뚱한 행동을 했다. 친구들이 그 상황을 웃어넘겼지만 나는 선우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성호네 집에 놀러 가면 태호는 전혀 거리낌 없이 게임도 같이하며 유쾌하게 말도 잘 받아쳤다. 나는 그런 태호와 선우를 비교하며 태호 같은 동생을 부러워했다. 때론 태호가 내 동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선우가 아예 죽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처음 맞는 스승의 날이었다. 중학교 때 3학년 3반이었던 아이들 몇 명이 모여 담임 댁에 가기로 했다. 담임은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3학년 3반 아이들이 의기투합하여 선생님께 연락했고 집으로 초대를 받은 거였다. 친구들은 이것저것 선물을 사 들고 담임 집을 방문했다.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한창 놀고 있을 때, 선생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정우야, 선우 신경 좀 써. 걘, 어찌 그리 너랑 다르냐? 수업 시간에 잠만 자고,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친구들 앞에서 그 말을 들은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창피해서 폭삭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싶었다. 몇몇 아이들이 들었는지 그 아이들 귓속을 지우개로 다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우 신경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일이었다. 내가 선우 교실에까지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신경을 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선우 신경 좀 써.’

친구들 앞에서 내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걱정이랍시고 툭 말을 던지는 담임의 무신경이 정나미가 떨어졌다.


선우가 아침마다 엄마에게 돈 달라고 행패를 부린다고 했다. 엄마는 선우와 실랑이를 하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아빠와 나는 아침 일찍 나가는데, 엄마와 둘만 있을 때 엄마를 들볶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그리 돈을 쓰는 건지. 혹시 빵 셔틀을 당하고 있나? 아니면 돈 셔틀? 어떤 놈에게 그리 시달림을 받는 건지, 이건 정상적인 행태가 아니었다. 안 주면 물건을 부수고, 행패를 부린다니. 조폭들이나 하는 짓을 서슴없이 엄마에게 저지르고 있는 선우.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았다.


학원에서 돌아온 나는 방에 있는 선우를 불렀다.

방문이 잠겨 있는 걸 보면 안에 있는 건 확실한데 대답이 없었다.

"선우야, 문 좀 열어봐. 할 얘기가 있어."

문 쪽에 바짝 얼굴을 대고 말했다.

한참 후 선우가 문을 열어줬다.

"왜 그러는데?"

선우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너 요즘 무슨 문제 있어? 아침마다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한다며. 안 주면 행패 부리고."

"엄마가 형한테 얘기해?"

"그래. 근데 왜 그러는데. 너, 혹시 빵 셔틀이야? 아니면 돈 셔틀? 어떤 놈이야!"

"알 거 없어. 형이 뭔 참견인데."

"말해라! 네가 말 안 하면 다 알아보는 수가 있어."

"상관하지 마. 공부하기도 빠듯할 텐데 뭔 오지랖?"

"비꼬지 말고 인마. 불면 그 새끼가 너 죽인대?"

"그건 알 거 없고! 나, 진짜 학교 다니기 싫어. 아무리 말해도 엄마 아빤 안 먹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다고. 더는 못 다니겠어!"

선우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학교 다니기 싫은 이유가 뭐냐고."

선우가 흥분할수록 나는 더 차분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날마다 돈, 돈, 돈! 그 새끼가. 말하면 나 죽이겠대. 그니까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씨발!"

선우는 발작하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 위에서 버둥거렸다.

"그걸 믿냐? 그 새끼도 무서우니까 그러는 거야. 지도 무서워서 너한테 겁주는 거라고 새꺄."

"갖다 주면 또, 갖다 주면 또. 그 개새끼, 나도 죽여 버리고 싶다고!"

선우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울먹였다.

"그러니까 그놈이 누구냐고!"

"안 돼, 그 새끼 만나면 나 죽어. 나 죽는다고! 만나면 절대 안 돼!"

선우는 눈동자를 뒤집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동안의 시달림이 얼마나 심했는지 한눈에 짐작이 같다.     


다음 날, 나는 성호 동생 태호를 만나기로 했다. 태호는 선우랑 같은 반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호네 집에서 자주 놀았고 태호와도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나는 빠듯한 시간을 쪼개, 태호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원 앞에서 기다렸다. 어제 성호와 통화해서 태호와 약속을 해둔 거였다.

학원을 마치고 나오는 태호를 붙들고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뭐 먹을래? 형이 사줄게."

"괜찮아, 형."

"괜찮긴, 그냥 형이 알아서 골라도 되지?"

나는 캔 콜라와 삼각김밥, 컵라면 두 개씩을 들고 계산을 치렀다.

태호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어서 먹어."

태호는 먹지 않고 어서 빨리 말을 하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선우 말인데, 반에서 어떤 애한테 돈 뺏기고 있냐?"

태호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모르는데?"

"너한테 피해 안 가게 비밀로 할 테니까 나한테만 살짝 얘기해줘 봐. 선우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래."

"선우가 왜?"

태호는 전혀 모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모르나?

나는 태호가 진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숨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선우가 날마다 엄마에게 돈을 가져가거든. 돈 주면 다 써버리고, 다음 날 또 달라고 행패 부리고 엄마를 들들 볶는 모양이야. 학교 가기 싫다 그러고. 이상하지 않냐?"

"이상하긴 하네."

태호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섣불리 제 속을 내보이지 않았다.

"너무 부담 가질 건 없고. 네가 좀 유심히 살펴봐 줬으면 해서 말이야. 부탁한다. 태호야, 형 얘기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았어, 형. 내가 좀 알아보고 연락해 줄게. 나 또 학원 가야 해서, 먼저 갈게."

태호는 컵라면을 먹다 반이나 남긴 채로 허둥지둥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성호에게 틈나는 대로 태호를 잘 꼬드겨 좀 알아내 보라고 문자를 보냈다. 성호에게서 오케이 답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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