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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 같은 당신

by 김미희건이나비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아들이 툭 묻는다.

“저기서 관식이를 무쇠라고 부르던데 엄마는 아빠를 한 단어로 어떻게 부르실래요?" 한다.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라고 대답하니

“그럼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시고 답을 주세요. 엄마의 답이 무지 궁금해요.” 하고는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저 녀석이 궁금한 이유를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 난다.


나는 남편과 소소하게 잘 다투는 편이었다. 소리 나게, 큰 싸움으로 벌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아이들이 보기에 썩 편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녀석들이 웃으면서 얘기한다.

“두 분, 저희 때문에 헤어지지 못했다면 이제는 괜찮으니 편하게 하세요.” 한다. 이젠 아이들이 우리 부부를 놀려먹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큰일이 생기면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줬는데, 정작 사소한 일은 용납이 잘 안 되고 한 마디씩 트집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늘 삐거덕거렸다. 싸운다기보단, 습관처럼 서로 잔소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이 들어가면서도 늘 먼저 좀 안 봐주나 생각만 하고 정작 내가 먼저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혹시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데려가고 먼저 걱정부터 앞서는 건 또 뭘까. 편안할 땐 무심하고 위급할 땐 애틋한 마음. 이 복잡한 심사가 뭘까.


결혼하고 나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나는 늘 남편 탓으로만 돌렸다. 미국서 일찍 돌아온 것, 4대가 한집에서 살아야 했던 것, 시어머님의 병시중도, 하던 사업이 힘들어졌던 것도,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남편 탓부터 했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두 사람 머리에 파꽃이 피면서 그 빈도는 줄었지만 내 안에 앙금이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다행히 요즘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비워지고 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되고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내가 다 만들고 지은 것이라는 기도로 마음을 비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 중에 모과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꽃은 이미 졌지만, 나무의 수피가 다른 나무들과 많이 달라서 눈에 띄는 아이다. 그 순간 문득 남편이 떠올랐다. 모과는 꽃이 예뻐서 놀라다가 그 열매가 못생긴 것을 보고 또 놀란다. 그러다가 그 향기에 놀라고 한 잎 베어 물기라도 할라치면 그 떫은맛에 또 놀란단다. 하지만 그 떫은 과육을 차로 마시면 얼마나 향긋한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모과나무가 남편과 많이 닮았다. 실망하다가도 또 놀래고 기대하다간 또 실망하고 늘 반전이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그 향에 취해 아직 옆에 남아있나 보다. 이제는 그 예쁜 꽃도 졌고 맛없는 과육이 향긋한 모과차로 변할 시간이다. 내 옆에서 오래도록 향긋한 차로 함께하는 모과나무가 답이 되겠니,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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