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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안나 Aug 26. 2022

죽은 친구에 대해서 생각하는 어느날

대학 졸업증명서를 발급받을 일이 있어서 졸업한 학교의 학생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당연히도 내가 학교에 다니던때와는 많이 변해있었다. 비밀번호는 기억이 안나서 초기화시키고 겨우 로그인해 이것저것 눌러보니 개인 정보 페이지로 넘어갔다. 옛날에도 이런 페이지가 있었나 생각하며 메뉴를 하나씩 눌러봤다. 주소는 예전에 살던 자취방 주소가 입력되어있었다. 그리고 비상 연락처 메뉴가 있어서 클릭해봤더니 동기 한 명의 이름이 뜬다. 011로 시작하는 그 옛날 번호와 함께.


그 친구는 몇 년 전 죽었다.


그 친구는 나한테 처음으로 일반적인 친구 관계를 경험하게 해준 사람이었다. 대학 입학 전까지 학창 시절에 나는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성격이 모나서 그랬을 수도 있고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친구는 그냥 밥을 같이 먹어야 하고 교실을 이동할 때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해서 필요한 존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나는 ‘친구’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수업 끝나고 학교 식당에서 밥 먹고, 공강 시간에 근처로 놀러 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나는 그 친구한테 먼저 남자친구가 생긴 걸 내심 질투한 적도 있고, 팀플 하다가 약간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고, 그래도 친구여서 다시 잘 지냈고, 같이 자취하는 처지라 같이 장을 보고 양파 한 망을 사서 반 나누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짧은 회사생활을 마치고 외국으로 이주했다. 나는 주위 친구들 중 가장 빨리 취업을 한 케이스여서 그 친구는 아직 취업준비생이었고 한동안 원하는 수준의 일자리를 얻지 못해 우울증과 신체화 증상을 앓았다. 우리는 떨어져있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으며 나는 나대로 일상생활을 헤쳐 나가기에 벅찼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그 친구는 원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취업을 하고 나는 나대로 해외에서 자리를 잡고 지내면서 우리는 종종 연락을 하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내가 한국에 가면 만나고, 그렇게 지냈다.


그 친구도 취업을 하고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친구는 다시 우울함을 토로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점점 더 연락의 빈도가 높아져서 매일같이 부정적인 말들을 들어야 했다. 아마 내가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 날 주말,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위해 전철로 이동하는 중에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 생은 이제 끝내려고’


이런 식의 메시지는 이전에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거나 화제를 돌리거나 했었는데 그냥 이번에는 또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냥 얘는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몇 번 대화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나는 답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친구는 정말 생을 끝내버렸다.


이십 대를 같이 보내고 그 친구는 이십 대 후반에 멈춰있는데 나는 그 이후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같이 삼십 대를 보내고 있었다면 우리는 아직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을까. 걔는 결혼을 했을까. 아이가 있었을까. 우리 사이에도 흔히 있는 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약속 장소 정하는 신경전이 있었을까.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내 푸념에 공감을 해주었을까.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나 한국 가면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고 그랬으면, 그래서 생각을 돌리는 데 성공했으면 나는 지금 외롭지 않았을까.


오래된 내 자취방 주소도 비상연락처도 아무것도 고치지 않고 창을 닫았다. 그냥 그렇게 멈춰있었더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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