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 갔다. 한국 갈 때마다 쓰던 한국 은행 계좌 체크카드는 진작에 유효기간이 끊겼고 사용 실적이 없어서 그런지 재발급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도착한 첫날인 일요일은 현금만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요즘 한국은 들은 것처럼 모든 곳에 키오스크가 보급되어있었고 ‘현금 없는 매장’이 많아서 일일이 직원을 불러야 했다. 그들은 친절하게 어딘가 어수룩한 이 이방인의 현금을 받아주었다.
월요일에는 각 은행을 돌아다니며 체크카드를 새로 발급받고 쓰지 않는 계좌를 확인하는 등 이런저런 처리를 했다. 여기에서도 각종 동의서와 신청 서식은 태블릿상에서 확인하고 서명하는 식이라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이방인은 당황했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내가 크게 놀란 점은 창구 직원이 내 업무를 담당하면서 동시에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놀란 이유는 일단 일본에서는 상대가 누구이든 대화나 업무 처리 중에 전화를 받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해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저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해서 놀랐을 뿐이다.
아마 새로운 예금 상품의 금리에 대한 문의인 듯했다. 직원은 전화상의 상대에게 예치 기간별 금리를 설명해주다가 ‘앞에 고객이 있어서 지금 통화가 불가능하니 나중에 전화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끝냈다. 태블릿 화면상에 사인을 하는데 다시 전화가 울렸다. 담당 직원은 또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손으로 태블릿을 가리키며 나에게는 사인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직원은 전화 두 통과 내 업무를 동시에 처리했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나는 내 기준으로 생각하면 제대로 일 처리를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이 직원이 뭔가 일 처리를 잘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들었지만 나는 무사히 새로운 체크카드를 손에 넣었다.
요즘 금리가 올라서 문의 전화가 많은 건가. 월요일이라 특히 전화 문의가 많은 건가 생각을 하며 다음 은행으로 갔다. 여기에서도 체크카드를 새로 발급받아야 했다. 여기에서도 태블릿상에 띄워진 서류를 확인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직원도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클레임 처리에 대한 관리자의 전화인 것 같았다. ‘아니, 그 설명을 못 들었다고 하시는데, 제가 설명을 안 했을 리가 없고…’ 여기도 한 손으로 전화를 붙잡고 눈짓으로 태블릿을 가리킨다. 고생이 많으시네…라고 생각하며 얌전하게 사인을 한다.
또 다른 은행이었다. 창구에서 더이상 쓰지 않는 계좌 해약 처리를 하는데 여기에서도 또! 담당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한정 판매인 예금 상품에 아직 가입이 가능하냐는 문의인 것 같았다. 여기에서도 직원은 통화를 하면서 동시에 내 계좌 해약 처리를 진행해 계좌에 남아있던 돈을 깔끔하게 빼서 나한테 건네주었다. 엄청난 스피드로.
그렇다. 은행 창구 직원이 창구 업무를 하면서 전화까지 받는 건 특별한 상황이 아닌 것이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전화 응대할 직원은 따로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의문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이런 게 당연한 듯했다. 내가 잊고 있었다. 한국 사회생활의 업무 강도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은 요구하는 레벨이 높다. 자기 자신이 받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그렇고 고용주가 종업원에게 기대하는 업무 성과도 남다르다. 은행에 전화를 하는 일반 고객은 전화가 연결되기까지 기다리기 싫어한다. 그러니까 창구 직원이 바로바로 전화도 받아야 한다. 은행 대면 고객 역시 기다리기 싫어한다. 그러니까 전화를 받으면서도 업무를 처리한다. 고용주는 인건비를 더 지불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한 명이 이 일을 다 할 수 있으니까.
은행만 그런건 아닐거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에서는 둘이 할만한 양의 일을 한 명이 다 하고, 내가 서비스를 제공받는 입장이 되면 그만큼을 요구하고, 다시 회사에서 두 사람 몫의 일을 하고, 이런 식이다.
다들 괜찮으신가요? 안 힘드세요? 부당하다고 생각은 못해보셨나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아마 모두들 익숙해져 있어 별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거다.
나는 못할 일들을 해내고 사는 여러분에게 경의를 보내며. 저는 한국보다 느린 사회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