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외에서 살면서 가장 아쉬워하는건 음식이나 다른 문제가 아니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몇몇 거리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일요일 아침에는 일어나서 일단 커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본다. 일본의 아침시간대 텔레비전 방송은 거의 가볍게 최근 이슈를 다루는 정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중 한 방송으로 채널을 돌렸다. 일본도 핼러윈때 시부야 등 번화가에 젊은이들이 모여 가장을 하고 떠들썩하게 즐기는지라 지난 금요일밤 거리의 온갖 특이한 가장을 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오고있었다.
영상이 끝나고 스튜디오의 진행자가 ‘네, 한국의 사례도 있었던 만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즐겼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멘트를 해서 그냥 간밤에 한국 어딘가에서 핼러윈을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라도 일어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핸드폰으로 한국 포털 사이트를 확인하는데 ‘사망자’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때는 아직 59명이라는 발표였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압사 사고가 났다는 기사였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말인가 싶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다니. 기사를 더 찾아보는동안 사망자는 150명으로 늘어나있었다.
나는 외부의 사건이나 자극을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게 아주 느린 사람이다. 외부 세계와 시차라도 존재하는 듯, 아주 행복한 일도, 아주 슬픈 일도 바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뉴스에서도 이 사고 소식을 보도하는 것을 보고는 그때까지는 아직 슬프다는 감정보다 또 한국 무시하는 사람들한테는 ‘후진국’, ‘국민성’ 운운하면서 비웃을 좋은 건수가 되겠네 싶어서 그게 싫었다. 그리고 내가 자주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로 가득 찬 출근길 전철이 역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뉴스에서도 이웃나라의 이 사건이 제일 먼저 보도되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통제 인력을 배치하지 않은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견해도 보였다. 한국 뉴스에서는 ‘주최측이 없는 행사’라고 선을 긋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났다. 나는 평소와 똑같이 사람이 가득찬 전철을 타고 출근했다. 출근길에 확인한 한국 인터넷을 보면 정치적 이용, 과도한 보상 등이 키워드가 되어 논란이되고있고 서로 애도와 의견과 또는 비난을 주고받는 것 같은데 이곳은 회사 분위기 자체가 업무 외의 이야기는 그다지 하지 않는 환경이라 평소와 똑같았다.
평소처럼 빨리 퇴근하고싶다는 일념으로 일을 처리해나갔다. 점심 먹고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었다.그리고 화장을 고치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렌즈때문에 항상 건조한 눈을 충분히 적시고 눈가에 맺힐 만큼.
내가 해외에서 살면서 가장 아쉬워하는건 음식이나 다른 문제가 아니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몇몇 거리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태원은 나한테 그런 거리 중 하나였다. 이십대 초반의 내가 걷던 그 골목, 그곳에서 처음 먹어본 먼 나라의 음식들, 사람들의 활기찬 웃음들, 노란색 가로등 불빛, 언젠가 친구와 헤어지며 손을 흔들던 육교 위, 저 너머로 보이던 남산 타워. 그곳에서 말도 안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이 아무도 상상하지도 못한 사고로 죽었다. 종종 떠올리고 그리워했던 즐거웠던 기억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자꾸 누군지 모를 젊은 사람들의 웃음이 떠올랐다. 자리에 돌아와서도 계속 조금씩 눈물이 흘러 코 뒤로 들어가는 바람에 훌쩍거리면서 일을 계속 했다. 해외에 있어서 갈 수 없어서 그리운게 아니라 이제 그 추억 자체를 빼앗긴 것 같아 계속 슬펐다. 그리고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서 나의 슬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그리고 다시 나의 추억을 잃은 것 같아 슬퍼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