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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안나 Dec 27. 2021

산타는 나한테만 선물을 준다(국제결혼 이야기6)

산타다!

우리 부부는 기념일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다. 남편이 나한테 현금을 줄 뿐이다.


둘 다 물욕이 별로 없는 데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집에 늘어나는 게 싫어서 결혼 후에는 선물을 거의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갖고 싶은 게 없냐는 남편의 질문에 몇 번 진지한 얼굴로 ‘현금’이라 대답했더니 남편은 기념일에 가끔 슬쩍 현금을 나에게 건네준다.

주로 이렇게. 봉투에 넣어서 어딘가에 올려놓거나 마술사처럼 짠 하고 소매에서 꺼내거나 하면서.


이렇게 두툼할 때도 있고


남편이 현찰을 넣는 이 작은 봉투는 일본에서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줄 때 사용하는 봉투이다.

ポチ袋 세뱃돈 줄 때 사용하는 봉투


결혼할 때 청첩장을 주문했더니 이게 덤으로 딸려왔다. 내가 버리려고 하는 걸 남편이 ‘어디 쓸 데 있을지도 모르잖아’라면서 보관해놓더니 어느 날부터 나에게 현금을 건넬 때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가 집에 오기 전에 현관에 미리 세팅해놓을 때도 있었고.


그리고 항상 봉투는 리필되는 거니 돌려달라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아침. 평일이라 남편은 먼저 출근하고

알람 소리에 한동안 이불속에서 뒤척이다가 이제 일어나야겠다 싶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더니 베개 옆에 이런 게 있었다.

눈을 떴더니 옆에 이런 게...


남편이다! 아니, 산타다!


코로나 때문에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나는 상여도 삭감된지라 하도 남편한테

‘나는 보너스도 없고!’이렇게 징징거렸더니 남편은

‘올해는 산타가 아마 작년보다 훨씬 더 좋은 선물을 줄 거야’라고 그랬다.

그리고 나는 ‘양말 큰 걸로 걸어놔야겠어. 나 어제 백엔샵에서 큰 양말 봤어’라고 말은 하고는 하도 바빠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내가 양말 이야기한 것 까지 기억하고 부츠까지 준비하고

출근하기 전에 몰래 이렇게 세팅을 해놓은 거다.


일단 누운 채로 현금을 한번 세보고ㅋ

남편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산타가 왔어! 근데 산타 원래 크리스마스 아침에 오는 거 아닌가?’

‘음, 아마 하루라도 빨리 주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참, 산타는 나에게만 선물을 준다. 남편의 말로는 내가 기뻐하면 남편도 기뻐하기 때문에 그게 선물이 되므로 산타는 나에게만 선물을 주는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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