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라는 것은 참 신기해서 내가 파고 있던 것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깨달음과 성찰이 다가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학습코칭을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논문을 뒤질 때는 파면 팔 수록 되려 더 이해가 가지 않고 어렵기만 했었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깨달음이 불쑥 솟아오르니 참 아이러니하지요.
교육학에서 교사 학생과의 관계는 매우 다양하게 정의됩니다. 때론 학생이 일방적인 수업의 객체이기도 하고, 때론 오히려 교사는 보조에 가깝고 학생이 스스로 학습을 개척해 나가기도 합니다. 우리 가까이에선 어떤가요? 앞선 글에서 저는 강의식 수업과 자기주도 학습 코칭에서의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다소 수동적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먹기만 하는 관계에서 좀 더 수평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코치와 코치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게 참 어려웠습니다. 본래 코칭은 수평적 관계인게 맞지만, 코치(선생님)과 대등한 관계까지 올라와 자기의 공부를 이끌어 나가려는 학생이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일단 양쪽의 역량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코치이(학생) 내부에 그 해답이 있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코칭 철학이지만, 학생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며, 그 해법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지식과 역량이 학생에게 있을리 만무하죠. 해법을 까먹지 않고 실천하는 것 만으로도 헉헉거릴테니까요. 결국 이 빅픽처는 코치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물론 이걸 충분한 대화로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하지만 말입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사교육에서의 학습 코칭에서 학생은 과연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사교육 서비스의 수혜자? 돈을 내고 나의 시간과 역량을 산 고객? 저는 제 학생들에게 앞날을 위해, 가까이는 성적, 멀리는 대입과 그 이후의 진로를 위해 얼만큼 당장의 즐거움을 희생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늘 귀에 달콤한 말과 즐거운 상황에서만 공부할 순 없습니다. 듣기 싫은 쓴소리도 나오고, 처참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너무 이해가 안 가고 어려워 울기도 하고, 그냥 하기 싫고 마냥 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학습 코치로서 최대한 대화로써 납득시키려 애쓰지만 상대는 아직 어린 청소년들입니다. 어른도 내일 아침 얼굴과 10년 후의 건강 따위 외면하고 치맥을 즐깁니다. 연일 뉴스에선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재와 미래만 그리고 스마트폰 액정 너머엔 자극적인 게임과 영상들이 그득한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절제하고 고통을 감내하겠으며, 돈을 받고 그들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저는 과연 얼만큼 그걸 강요할 수 있을까요? 저의 학습 코치로서의 역량은 얼만큼 그들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적이 상심하여 원장으로서의 업무를 위해 이것저것 뒤지던 중,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였습니다. 브런치에서 '직무분석'과 관련된 글을 연재중이신 HRFriend최영훈님의 매거진이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hrfriend
흥미진진하게 글을 읽으며 학습 코치이자 학원장인 제 직무를 분석해보기 시작했고, 지식과 기술이 어떻게 다른지, 거기에 티칭과 코칭이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보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학습에서의 성과가 무엇인지, 성과목표는 무엇인지, 성공요인은 무엇인지 분석해보고 제가 여기에서 어떻게 지원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니 훨씬 더 머릿속이 명확해졌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지식'과 '기술'은 나중에 교육시킬 수 있지만 태도는 바꾸기 어렵다는 것. 그러니 애초에 태도를 갖춘 인재를 채용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저는 다분히 업무(공부)에 대해 적의적이고 수동적이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갖춘 사람들과 한 팀입니다! 마음 속으로 눈물 깨나 쏟았지요.
이 과정에서 의미있던 깨달음은, 학생들과 저는 어쩌면 일종의 협업 관계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코칭이 잘 굴러가도록 서로 협조해야 합니다. 또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의사소통도 중요합니다. 그걸 기록으로 남겨 추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 시스템도 중요합니다.
법대를 나와 공부 잘했던 덕에 아이들 가르쳐온 저로선 이 '경영'이라는 것이 참 새롭고 신선하고 놀라웠습니다. 학원이라는 사업체를 경영해서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경영합니다. 늘 원대한 목표와 이상만 갖고 설득력은 부족한 나와 게으름 피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나 사이에서 말이죠! 이런 성찰이 학생들에게 제 코칭을 전달하는데도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재미를 본 덕에 오늘도 저는 도서관의 온갖 섹션을 돌아다니며 책을 찾습니다. 경영, 경제, 심리학, 교육, 육아, 상담, 철학, 인문 등등. 어느 하나 잘 얻어 걸려 지독히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우리 아이들의 궁둥이를 조금 더 붙여놓을 방법을 찾길 바라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