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주 Jan 06. 2019

생기 잃은 얼굴엔 이유가 있다

영화, 아버지의 초상 / 흑백 꿈 1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아버지의 초상')


   

프랑스 영화 <아버지의 초상. 2016>에는, 회사의 부당해고로 갑작스럽게 실업자가 된, 한 집안의 가장 티에리가 나옵니다. 티에리는 2년간의 구직 끝에 대형 할인점에 취직합니다. 티에리에게 맡겨진 일은 보안요원으로, 매장 내에 CCTV를 통해 모든 사람을 감시하는 일입니다. 보안요원에게 마트 안의 사람은,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만 나뉩니다. 티에리가 적발했던 물건을 훔친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것들을 훔치는 생계형입니다. 보안요원으로서 티에리에게는 고객만 감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까지 포함됩니다.

 

계산원으로 일하는 동료가 적발되는 경우, 돈이나 물건을 훔쳐서가 아닙니다. 고객에게 주는 할인 교환권을 슬쩍 챙기거나, 고객에게 적립되는 포인트를 자신에게 적립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걸린 동료가 한 번만 봐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티에리는 외면해야 합니다. 고기 한 덩이를 훔쳐 돈을 내면 나갈 수 있는 생계형 도둑, 고깃값을 낼 수 없어 처벌을 받아야 할 때도 외면해야 합니다. 모두 보안요원으로서 자신의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이러한 일들이 티에리의 마음을 무겁다 못해 견디기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장애 아들의 학비를 내야 하는 아버지이자,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입니다. 2년 동안의 실직으로, 팔아야 할 위기에 처한 집과 아들의 학비가 코앞에 닥쳐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딱한 사정이나, 자신 안에 올라오는 연민 모두 외면해야 합니다. 


보안요원으로 티에리는 점점 무미건조하며 경직된 표정이 되어갑니다. 이마와 눈가에 깊게 팬 주름, 굳게 다문 입술은 타인과 자신의 감정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가장’의 얼굴이었습니다. 티에리의 생기를 잃어가는 얼굴에 대한 이유입니다.     




만약 영화 속의 티에리가 잘 때 꾸는 꿈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흑백 꿈으로 꿀지 모릅니다. 꿈을 흑백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주로 행정,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기 내면을 다룰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배려와 관심을 보이면서 일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일을 완수해내야 하므로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 정서를 들여다보지 못할 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 정서 또한 고려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이 성격상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이 오래 진행되다 보면,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조차 관심을 두지 못하고 감정, 정서는 둔감해집니다. 어느 날 생기 없이 죽어있는 무표정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는 티에리뿐 아니라 우리 누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한때는 암흑 같은 시기를 보낼 때가 있을 것입니다. 흑백으로 꿈을 기억할 수밖에 없지요.      



모든 사람은 꿈을 꿉니다. 그러나 깨고 나서 꿈을 기억하지 못할 때 자신은 꿈을 안 꾼다고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꿈은 천연색이지만, 사람에 따라서 꿈을 흑백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천연색 꿈과 흑백 꿈의 의미는 확연히 다릅니다. 꿈의 색채가 다양하고 선명할수록 자신의 감정 정서가 잘 살아있지만, 흑백 꿈은 자신의 정서와 유리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있기에 감정을 느끼기 어렵고 표현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면 상대의 감정에도 별 관심이 없겠지요.     

 

흑백 꿈은 말 그대로 세상을 흑백으로만 봅니다. 삶의 다양한 색채와 복잡다단함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보기 어렵지요. 옳고 그름, 맞다 틀리다, 좋다 나쁘다, 이거냐 저거냐로만 분리됩니다. 이런 삶은 승패나 패승, 피해자와 가해자, 내편 네 편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경직되고 융통성이 없을 수밖에요.      


여러분은 흑백 꿈을 꾸시나요, 천연색의 꿈을 꾸시나요? 

그동안 흑백의 방식이나 혹은 우유부단하여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회색으로 살아왔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색깔의 꿈을 꾸어왔는지 관심을 기울이기만 해도, 오늘 밤 당신의 꿈은 색채 있는 꿈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때 꿈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색깔은 빨강입니다. 빨강이 나오고 나면 다른 색들은 단시간 내에 등장합니다. 빨강은 피 색깔과 연결됩니다. 우리의 피는 다 빨간색입니다. 피는 살아있는 존재에게서 펄떡거리며 순환됩니다. 뜨거운 피와 같은 가장 강렬한 감정을 시작으로 자신 안에 눌러두었던 다른 감정들이 점차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꿈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쉰들러 리스트>입니다. 영화 내내 흑백으로 나오다가 전쟁이 끝나고 암흑의 시기가 지나자 점차 흐릿한 빨강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천연색으로 바뀌며 끝납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매일 힘겹게 하루를 버티며 보안요원을 하는 티에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밖에 없는 집을 팔아야 할 위기와 아들을 공부시켜야 하는 아버지로서는 어렵게 얻은 직장을 그만두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가족을 살릴 것인가, 다시 궁핍한 현실로 돌아가더라도 직장을 그만둘 것인가.’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하고 싶은 일, 끝까지 책임지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