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 /이빨 빠지는 꿈 2
저에게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수학을 잘 못 했습니다. 점수가 2, 30점대였으니까요. 아들은 고 2가 되더니 수학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런 점수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들어갈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2학년 학기 초,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요.
“엄마, 나 나중에 노숙자 되면 안 버릴 거지?”
깜짝 놀랐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수학을 못 하면 원하는 대학을 못 가고, 그러면 원하는 일도 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은 노숙자가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답니다. 수학 때문에 비약해서 자신의 삶을 바닥까지 내던지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나는 힘 있게 말했습니다.
“넌 절대 노숙자 될 일 없어! 무엇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식을 버리는 일은 없어!.” 그리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거야.”
아들은 일단 버림받지 않는다는 말에 안도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가능해 보였던 수학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찾아보는 듯했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의 조언을 구하고 자신에게 맞는 학원도 알아보더니, 집 가까이에 자신과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아들은 매일 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자는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잠을 자다 화장실 가려고 나왔는데 아들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아직 안 자고 공부하는 거니? 너무 늦었는데 그만하고 자야지”
“엄마, 나 수학 풀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서 잠이 안 와.”
시계를 보니 3시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아들은 수학을 풀어내는 과정이 즐거웠던지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나 지금 너무 행복해!”
그렇게 공부한 아들은 한 학기 만에 수학을 만점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능에서 1등급을 받았고요.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학과의 대학에 들어갔고, 지금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덕분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공부의 즐거움은 선물이었습니다.
아들이 수학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떡하니?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을까?’ 혹은 ‘그러니까 놀지 말고 열심히 했어야지’라고 비난 반, 걱정 반의 표정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들도 수학은 자신에게 불가능하고 오래 걸린다는 것을 확인하는 꼴이 되어 그냥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을 보면서 우리가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의 문제임을 확인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무언가를 시작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진 것이 무엇이 있었나? 돌아보니 여기저기 조금씩 파다만 구덩이들만 무성했습니다. 그저 조금 하다 힘들면 그만두고, 열심히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막히면 포기했습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거라 여기면서요. 저는 잘하고 못하는 것, 성취해 내고 못 하는 것이 다 능력 때문이라 여겼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모르니 자신에 대한 믿음도 몰랐습니다.
제가 <며느리 사표>를 쓸 때였습니다. 무심코 ‘내가 이걸 완결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 없게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딸이 하는 말, “엄마, 엄마는 우리에게는 ‘잘할 거야,’ ‘할 수 있어!’라고 힘 있게 얘기해주면서, 왜 엄마 자신에게는 안 될 거라 여겨?” 이 말을 듣고 뜨끔했습니다.
나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보이지 않게 부딪혔던 것은 내 안의 부정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잘할 수 있을까?’라는 소리였습니다. 이것은 나의 열정과 의지의 나사를 빼버리고 그날 밤 이빨 빠지는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이빨이 그대로 있어서 우리가 제대로 씹을 수 있듯이, 하고자 하는 일 또한 어떤 식으로든 꼭꼭 씹어서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허황된 환상을 목표로 세운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감은 자기 책임과도 연결됩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못 했어.’라는 말은 책임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곗거리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능력이 없어서 못 한 거야.’라는 합리화,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결과를 떠나 끝까지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 (이빨로) 물고 있던 것을 금방 놔버릴 것입니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나의 염려는, 책임지지 않고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였던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일이든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기 책임’에 대해 직면해야 했습니다.
4, 5년 전부터 끄적거렸던 글쓰기를 2년 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의 첫 책을 써오는 과정에서 여러 걸림돌이 있었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졌습니다. 1년여의 초고와 퇴고를 거쳐 <며느리 사표>가 완성되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전히 내 안에서는 ‘제대로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올라옵니다. 그럴 때마다 다짐해 봅니다. ‘어디 한번 끝까지 물고 놓지 않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겠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고 싶은 일, 하고자 하는 일이 있나요? 그렇다면 끝까지 한번 물고 늘어져 보세요. 그럴 때 자신에 대한 믿음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은 덤이고요.
언제부터인가 자주 꿔왔던 이 빠지는 꿈을 저는 더는 꾸지 않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