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먹습니다.
흑염소는 한국의 대표적인 보양식이다. 한때는 보신탕도 보양식의 대명사였는데,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기피하기 시작하면서 흑염소가 그 자리를 메꾸었다.
흑염소는 장희빈의 남자, 숙종이 즐겨먹던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숙종은 조선왕조에서 왕권이 높았는데 이유는 타고난 혈통, 그러니까 잘 태어난 덕분이다.
그는 매우 정통적인 왕실 핏줄을 타고났다. 아빠 효종은 외아들, 엄마 명성왕후는 정실부인, 숙종은 형제 중 유일한 아들이다. 왕중에서도 얼마나 오냐오냐 자랐을지, 동시에 얼마나 좋은 걸 먹었을지 짐작 가능하다. 실제로 숙종은 조선왕조 중 두 번째로 장수했고 (58세) 첫 번째는 숙종의 아들 영조다. (81세)
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좋은 것만 먹었을 숙종의 음식 중 하나가 흑염소다. 그는 검은 식품을 즐겼다고 하는데 검은콩, 검은깨, 오골계 그리고 흑염소다. 흑염소는 저지방 고단백 음식으로 말그래도 보양 그 자체다.
이렇듯 흑염소가 건강식의 상징이 되니, 부모님들은 자식들 흑염소 한 마리 더 먹이려고 난리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연말 본가에 내려갔는데 흑염소 집에 데려갔다. 자취를 하면서 본가에 월에 한 번씩 방문하는 편이다. 딸 걱정이 되는지 꼭 좋은 거 한 그릇씩 먹이려고 하신다. 지난번에는 흑염소 전골을 먹었는데 이날은 가볍게 탕으로 시켰다. 특이 고기가 더 많이 들어가 있다며 엄마는 특 두 그릇을 주문했다.
가게 문을 여니 시끌시끌 손님들이 많은데 팔할이 아재다. 막걸리 8병에 잔뜩 취해 있는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젊은 여성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진짜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오히려 신이 난다.
나는 밥 한 공기와 펄펄끓는 뚝배기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성인이 된 이후로 엄청나게 먹는 양이 늘었다. 보는 사람마다 작은 체구로 어떻게 그렇게 다 먹냐고 놀라는데,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은 분명 축복받았지만 잘 먹는 만큼 소화가 빨라 위 영양제를 달고 사는 단점이 있다.
한참 클 청소년기에 이렇게 먹었으면 아마 키가 15센티는 더 컸을 거다. 어렸을 땐 그렇게 맛없게 느껴지던 매운탕, 콩국수, 회 등은 이제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편식이 심해 피자도 빵 테두리만 먹었다. 가족끼리 미스터피자에 갔었는데, 가족들은 피자의 핵심 부위를 먹고 나에게 빵 테두리를 던져줬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아동학대인가 싶겠지만, 당시 엄마는 제발 치즈 부분을 먹으라 했으나 나는 야채가 싫다며 기를 쓰고 빵 테두리를 찾았다...
문득 공부도 먹는 것도 다 때가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지금 먹는 것처럼 먹었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숙종처럼 다이아몬드 수저는 아니지만, 그래도 뭐 이만하면 잘 태어난 핏줄이 아닐까싶다. 건강한 바디, 적당한 비율, 체중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거 먹도록 낳아주신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도 숙종처럼 야무지게 장수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