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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Dec 18. 2023

결혼? 이제와서 절친이라니

인간관계는 강물과 같다

"조조야 잘 지내?"


한때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친구 A는 결혼을 할 때가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결혼을 핑계로 연락해 다시 잘 지내고 싶어서 연락했단다.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하객이 필요했던 게 자명하다.


그녀와 연을 끊은 지는 3년 차다. 어느 순간 내가 나가떨어졌다. 한때는 '절친'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던 친구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녀는 '절친'을 의심케 했다. 내가 정말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는 어쩐지 나 몰라라 하던 친구였다.


고3을 함께 보내고 내가 대학교 재수를 할 때, 그다지 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지금의 탕후루 같은 일본엿을 사가지고 응원온 게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당시 서로를 '절친'이라 부르던 A는 코빼기도 안보였다. 얼마나 서운했는지, 대학 생활을 하는 중이라 바빴겠거니. 그땐 이해했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다시 연락이 닿았다. 아무렴 20대 초반에는 즐거운 시간을 그녀와 자주 보냈다. 청춘의 시절 그녀와 함께 소녀처럼 얼마나 까르르거렸는지 모른다.


그녀는 나보다 이르게 직장에 들어갔다. 이윽고 내가 취업준비로 허덕이는 동안 그녀와의 연락은 또다시 끊겼다. 근황도 응원도 없었다. 이따금 내가 프리랜서 등으로 일을 하게 될 때 만나곤 했는데, 그것도 약속을 파투내거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안읽씹'을 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나의 시간은 전혀 존중해주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A가 종종 연락이 먼저 올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대체로 남자친구와의 다툼, 갈등,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외로운 취준 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녀와 대비되는 다른 따뜻한 사람들의 응원 속에서 A와의 연을 지속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정확히는 마지막으로 온  A의 카톡을 내가 씹었다. 그렇게 약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도 나이가 들어 30대가 되었고, 직장에 다니고, 더는 A와는 공유하지 않아 그녀가 모르는 '남자친구'도 오래 만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3년 만에. 아니나 다를까 결혼을 한단다. 결혼식 하객을 떠올리니 아찔했을 거다. 주변에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던 타입이다. 인간관계를 둘러보니 갑자기 내가, 아니 나와의 추억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20대 초반 가장 예쁠 나이에 각자의 연애를 공유하고 성장하며 많은 추억을 쌓았긴 했다.


하지만 나는 칼같이 얘기했다. 결혼 소식으로 3년 만에 연락이 오니 솔직히 많이 서운하다고. 마음으로는 축하한다고. 그녀는 식에 안 와도 상관이 없으며, 그저 나랑 다시 잘 지내고 싶다고 했다. 자기가 잘하겠다고 한다. 무슨 헤어진 전남친도 아니고. 갑자기 왜 그러는 걸까?


돌이켜보니 내가 좋은 사람, 좋은 친구였다는 생각이 들었기라도 한 걸까.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부질없고 삭막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다.  A 역시 순수했던 시절, 싱그러운 20대 초반의 '절친'이 아니 그때의 추억이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 듯 이 인연을 다시 받아도 되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내키진 않는다. 아쉬울 것도 없고, 그때의 추억은 좋은 추억이었을 뿐. 마치 헤어진 전남자친구들처럼 그 시절의 추억만 마음에 간직하면 그만이다. 사람을 잘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다. 굳이 그녀와의 연락을 통해서 반복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진 않다.


A로부터 깨달은 바가 있다. 결국, '좋은 사람은 떠오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연애가 그렇듯 말이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었는지 아닌지는 철이 들고 나이가 좀 차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버스를 놓치고 뒤늦게 손을 흔들어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상대 또한 그 이기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버스가 다시 멈추기란 쉽지 않을 테다.


그러니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주변에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그들과의 관계에 진심과 성의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인간관계에서 소중한,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기심의 발로로 허무하게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인간관계는 계속해서 변하고 깊이와 농도도 끊임없이 변한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반드시 절친일까? 사회에서 만나도 뜻밖의 절친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오래 유지되는 건강한 인간관계는 빈도나 길이가 아니다. 나와의 '결'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사실에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관계의 양보다는, 소수라도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의 관계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인간관계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관계는 그저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개중에서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소수의 그들과 현재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면 그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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