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조 Dec 16. 2023

붕어빵과 자본주의

잉어빵 먹을래요

바야흐로 붕어빵의 계절이다. 집 근처 대로변에는 잉어빵 노점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겨울철 붕어 장사는, 아니 잉어 장사는 이 집이 독점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잉어빵 집 바로 옆 붕어빵 노점이 자리를 텄다. 암만 그렇지 너무 대놓고 바로 옆에서 붕어를 판다.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붕어냐 잉어냐, 그것이 문제로다.


새로 오픈한 붕어빵집은 가격 경쟁으로 승부를 보는듯했다. 붕어빵집은 3마리에 천 원. 반면 원조 잉어빵집은 2마리에 천 원이다.


맛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한 마리 더 주는 붕어가 갓성비다.(비록 노점이지만) 신장개업인 만큼 장비도 깔끔해 보여 붕어맛을 보기로 했다. 우선 3마리를 주문했다.


건네받은 붕어 3마리를 싱싱하게 먹으려고 종이백도 오픈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는데 웬걸. 겹쳐진 붕어 사이로 습기가 가득 차서 붕어들이 다 쪼그라져있었다. 팥도 붕어 허리에서 끝나고 맛은 좀 달았다.


원조 잉어 맛을 보기로 했다. 붕어보다 마리당 약 170원이 더 비싸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이유가 있는걸까?


실제로 잉어는 달랐다. 4마리를 주문했고 똑같은 상태로 집으로 가져갔지만 잉어들은 겉바속촉으로 싱싱함이 살아있다. 색깔도 어쩐지 더 황금빛이 난다. 잉어들이 쪼그라들어 얄팍한 장어모양이 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흡족했다.


게다가 잉어는 팥도 꼬리까지 꽉 차 있다. 좋은 팥을 쓰는지 불량식품처럼 달지도 않다. 한국인에게 '안 달고 맛있네'는 음식 맛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누군가 그랬다.


한번 잉어 맛을 보니 그 이후로 종종 생각이 났다. 하지만 잉어빵집의 영업전략은 '애 태우기' 인가? 퇴근 후 몇 번 찾아갔으나 문이 닫혀있는 경우가 잦았다.. 경쟁자가 바로 옆에서 활개치는데 문도 안 여는 잉어빵집. 이대로 돌아가긴 아쉬워 붕어빵집에서 6마리를 더 먹어보기로 했다. 뭐, 지난번에는 아주머니가 잘 못 구웠을 수도 있으니까. 재도전.


2천 원을 주고 붕어 6마리를 샀다. 6마리를 한 봉지에 꾸역꾸역 넣고 집으로 뛰어갔다. 뛰어간 이유는 붕어의 싱싱함(겉바속촉)을 위해서다. 붕어들이 찬 공기를 충분히 마실 수 있게 종이백도 오픈했다. 그러나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역시, 붕어들은 삐쩍 마른 장어가 되어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건  6마리 중 1마리에서 새까만 인간 머리카락이 보였다. 반죽 속에 박혀있는 걸로 보아 내 머리카락은 아닌 게 확실했다.


"에이 씨"


그래, 이건 인간 머리카락이 아니다.

붕어의 비늘이다. 붕어의 비늘이다. 붕어의 비늘이다. 붕어의 비늘이다.... 붕어의 비늘이다...........


그렇게 자위하면서 한 마리를 쓰레기통에 휙 던졌다. 사람 머리카락처럼 생긴 붕어 비늘을 마주하고 살짝 입맛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남은 5마리를 흡입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부터 완전 잉어만 먹는다"


그리고 이번 주,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잉어빵을 먹기 위해 달려갔다. 붕어빵집이 가시거리에 들어오니 저 멀리 문 연 게 보인다. 나이스! 신나서 뛰어갔는데, 젠장. 핸드폰을 안 가져왔다. 계좌이체를 할 수가 없다. 오직 카드지갑뿐이다. 잉어를 먹기 위해 CU에서 현금을 인출했다. 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잉어 4마리를 주문했다.


확실히 잉어가 맛있다. 그런데 고물가 시대에서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옆집 붕어집에만 사람이 가득하다. 잉어 몇 번 먹었다고 잉어집 아주머니에게 라포가 생겼는지, 나는 괜히 붕어집에 눈을 흘겼다. 그리곤 아주머니에게 "옆집 보다 여기가 더 맛있더라고요" 라고 한 마디 건넸다. 잉어집 아주머니는 "우리는 찹쌀을 넣거든요"라고 발 빠르게 답했다.


싱싱한 잉어의 비결은 찹쌀이었구나. 마음 같아선 붕어집 사람들에게 '이 집 잉어도 한번 먹어보세요.' 외치고 싶었지만. 아직 잉어 맛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2개 천 원보다 3개 천 원이 더 매력적일 수밖에.

 

나란히 장사하는 붕어빵집과 잉어빵집을 보면서 자본주의를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마케팅, 베블런 효과 등) 값비싼 재화는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이유 없이 싼 건 없는 것 같다. 저렴하면 저렴한 이유가 있다.


잉어빵과 붕어빵. 무엇을 택할지는 제각각 취향의 문제다.다만 '근거 있는' 비싼 잉어빵을 맛보니 비단 잉어'빵' 뿐만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잉어들을 맛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진다. 


아 -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일하면 쉬고 싶고, 놀면 일하고 싶은 아이러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