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백수 탈출기2
면접 기회가 생겼다. 오래간만에 정장을 꺼내 입고 구두도 신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일하는 시민’들을 관찰했다. 삼삼오오 점심 먹으러 가는 직장인, 공사 중인 인부, 택배기사 등등… 스치며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나도 빨리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지금 이 백수 생활이 좋으면서도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거다. 이러다 직장인이 되면 지금 이 순간을 또 그리워하겠지.
잡다한 생각을 갈무리하다 보니 면접장에 도착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내 차례가 되었다. 한창 면접을 보던 중 한 면접관이 내 이력서를 쭉 훑더니 이렇게 물었다.
경력은 많은데…
“그동안 본인이 뭐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이 질문의 배경은 이렇다. 나는 한 때 이른바 ‘고시’라 불리는 시험을 오래 준비했었다. 하지만 매번 최종이 큰 벽이었다. 여러 가지 필기와 실기라는 관문을 뚫었지만 늘 최종 임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의 역량이 부족한 면도 있었겠지만, 이쪽 분야의 구조적 특성도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아마 내가 조금만 더 좋은 학사를 가졌다거나 남성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최종에서 매번 털리진 않았을 거라 자위 반 확신한다.
어쨌든 그의 질문 의도는, 서류나 인물이나 멀쩡해 보이는데 그동안 (정규직은) 안 됐을까? 에 대한 우려 반 리얼 궁금함 반인 거 같았다.
솔직히 해당 질문을 듣는 순간,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질문을 던지고 ‘아차’ 싶었는지 “지원자 본인이 문제가 있었다는 게 아니라…”고 덧붙인다.
취준생을 대변해 한 마디 하고 싶었다. 최종 면접에 왜 떨어지는지 우리들도 궁금합니다만? 왜 떨어지는지 알려주기라도 하시든가. 그걸 알았으면 취준생과 이직러들이 이러고 있겠냐?
어쨌든 적당한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입은 다물었지만, 만일 이 시대에 ‘취준감수성’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그런 게 조금은 부족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전국의 구직자를 향한 이러한 인식이 깨지지 않는 한, 구직자도 구인자도 윈-윈할 채용은 점점 더 쉽지 않을 것 같다. 작금의 ‘대퇴사 시대’가 이미 방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면접관의 질문은 한동안 내 마음을 휘저어 놓았다. 나는 그저 나의 그릇을 튼튼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누군가 왜 거기에 물은 안 담기냐며 “그건 문제다”라고 한 마디 던진 셈이었으니까. 괜히 열심히, 소중히 살아온 내 삶을 탓할 뻔했다. 내가 뭘 잘못 살았나? 하마터면 부정적일 뻔했다.
물이야 언제든 담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운이 좋으면 더 좋은 물이 담기는 거고. 물을 언제 채울지는 몰라도 나만의 튼튼한 그릇 만들기에 열중하는 이들에게 ‘문제’라는 단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치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삶이라는 공방 안에서 저마다 튼튼한 그릇, 개성 있는 예술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일뿐이다.
그러니 괘념치 말자.
좋은 에너지만 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