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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 Oct 04. 2024

엄지의 재생 Renaissance

약 16개월 전 겨울, 가까스로 살아남은 나는 냉수 마찰과 비슷한 목적으로 헬스장에 매일 나가기 시작했다. 8개월 전,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다 나른해진 찰나에 손에 힘이 빠졌고, 내 손 안에 있던 무거운 원판은 그대로 내 엄지발가락으로 낙하했다. 찰나의 회상이었지만 대가는 확실했다. 그 이후로 어제까지 살과 발톱 사이에 피처럼 고인 그는 사라지지 않았고, 내 몸에 남은 너의 흔적은 나로 하여금 너를 계속 상기하게 했다. 그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마치 연인의 이름을 타투로 새겼지만 감상의 변화로 인해 지우려 발버둥치는 연인과 같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너는 죽었다. 너는 내 안에서 죽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저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부패시킬 뿐이다. 그 사건 이후 내 신체의 일부가 죽었다. 의사에게 피를 빼달라고 애원했다. 그것이 나에게서 분리되어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할까 두려웠다. 폭포수처럼 손으로 아무리 막아도 솟아나오는 시기를 지나자 다시 구멍을 내고 빼는 것이 싫어 하루는 내 안에 그대로 고이게 놓아두었다. 그 사이에 그것은 서서히 말라가 나 몸 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와 나를 이어줬던, 둘 사이를 흐르던 그때 그 물도 시간의 흐름 앞에선 생명력을 잃는다. 그 물은 우리의 시선에 닿고, 돌에 부딪힌 후 어느 새벽의 바람과 맞닿아 서서히 말라갔을 것이다. 이제는 너의 손 위에 있었던 미세한 땀의 촉감도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내 엄지발가락 끝에서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조각이 하루빨리 없어지기를 바랐다. 태생부터 생명력이 강한 것들에 대한 맹렬한 욕망이 있었던 나는 이 건조하고 생명이 없는 조각이 나의 활기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였고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소망했다. 그러나 그것이 떨어져나간 오늘, 나는 그것을 찾아 보관해두고 싶어졌다. 분명히 이 순간이 오기를 바랐다는 기억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내가 매일 밤 몸을 뉘이는 매트리스 옆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딱딱한 무언가가 밟혔다. 마치 잠을 자다 생의 끝을 맞이한 고인이 된 것 같은 평안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억지스러워질 때 쯤 나는 재생되었다. 물이 마른 흔적도 내 몸에서 없어져 간다. 물의 마른 흔적을 없애는 방법은 더 많은 양의 물을 흘려보내는 것 뿐, 다른 방법은 없다. 가뭄이 왔다면 또 다른 홍수를 기다리며 신에게 기도하는 것 뿐. 예전부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너와 내가 바라보고 있던 청계천의 물과 그 날의 대화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영화의 형태라기보다는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모나리자에게서 느끼는 생동감과 비슷하다. 그렇게 너는 나에게서 떨어져나와 내 방안에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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