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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이기보다는 쓰는 삶

연애 조언

by 연하

그녀는 두 권의 독립출판물을 낸 작가이다. 그녀는 두 번의 연애를 했고, 그 경험을 에세이로 엮어 두 권의 책으로 만들어냈다. 나는 그녀를 6년 전, 대학교 2학년 때 서울의 한 유명 독서모임 뒤풀이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모임만 갔다가 뒤풀이는 가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그녀가 간다고 해서 그녀와 친해질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갔다. 그녀는 나보다 4살 많았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았고, 술자리가 무르익어 둘씩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고, 사귀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있다고 말했다.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나와 달리 그녀는 5번 정도의 연애를 했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술기운이 올라왔는지 빨개진 볼로 까르르 웃으며 나더러 엄청 순수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너무 취한 것 같다며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게 좋겠다며 그녀와 밖으로 나왔다. 밤거리를 걸었고, 편의점이 보이자 그녀는 “아이스크림 사주까”라고 말했다. 우리는 쌍쌍바를 두 개 사서 나눈 후 하나씩 교환했다. 그리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여름밤공기는 내 안의 무언가를 들뜨게 했다. 마치 마음속에 쌓아놓은 여러 장의 종이들을 바람이 흩뜨려놓는 듯 했다. 그녀 또한 비슷한 마음인 듯했고, 이내 자신의 전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정리되지 않는 말을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배설하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관계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를 할 때도 어디까지 이야기할지, 어느 부분을 생략할지를 생각하며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내면에 그것이 존재함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숨김없이 다 했을 때 상대에게 얼마나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줄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지닌 파괴력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아이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무렵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탐구했다. 범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부터, 미스터리 소설까지. 뉴스의 정치와 사회면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보았다. 세상을 탐구하기 위해 흥미가 없는 책도 읽었다. 그리고 교회를 가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가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몇 남자들과 연인이라는 명목으로 만나기는 했지만, 모두 다 한 달을 넘지 못했고, 자신의 그녀에 대한 마음이 단순한 성적욕구를 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머물다 갔다. 그들은 그녀의 겉모습으로 순진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가왔지만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에게 어떻게 짧은 시간 내에 갑자기 끌릴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던 그녀는 한 달간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는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때 알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고 믿었기에 서로를 그렇게 규정짓는데 동의했다. 그녀는 상대가 진심을 실토하도록 유도하면서도 상대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침착함과 판단력이 있었다. 이런 그녀를 그는 ‘의심이 너무 많다.’라고 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의. 눈빛과 말, 행동을 분석하며 겉으로는 미소를 띠며 차분함을 유지했다.


삼 주 정도 되었을 때, 어쩌면 그와 알맹이는 없고 연인이라는 껍데기만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처음에 설정해 놓은 기간인 30일은 채우기로 했다. 이런 걸 보면 그녀는 꽤 신중하고 원칙주의자인 면이 있는 듯하다. 결국 29일째 되는 날, 그는 자신이 반쪽짜리 사랑만 하고 있다면서, 육체적 관계를 이렇게 오래 참은 건 처음이라며 “아직 사랑하기 전”이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일주일 전 했던 말이 모순임을 의도치 않게 실토하였다.


그녀는 직감이란 참 신기하다. 고 생각했다. 사랑이 섞이지 않은 성적욕구, 그것은 특유의 향이 있다. 옆에서 그 향을 맡으면 거부감이 느껴지고 어서 자리를 뜨고 싶고 웃음이 사라진다. 어떠한 달콤한 말로 현혹해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작가라 그런지 역시 쓰이는 것보다 쓰는 것이 취향에 맞고 적성에도 맞는 듯해”라고 말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여름밤공기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방금 전 그녀가 한 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일주일 후 그녀를 다시 마주쳤을 때 그녀는 그녀와 내가 둘이서 산책을 나갔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후로 나는 동아리 활동이 바빠져 그 모임을 나가지 않았기에 그녀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오늘 같이 몸을 데우는 바람이 땀이 흐르지 않은 메마른 피부에 와 닿을 때, 6년 전 그녀의 얼굴과 표정, 목소리가 떠오른다. 달이 서서히 차오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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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12화역시 이번에도 마의 한 달을 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