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 ep.2
“너는 나비야.”
암막 커튼도 모자라 이불을 머리 위로 바짝 뒤집어썼는데 핸드폰이 계속 징징 울렸다. 엄마였다. 뜬금없이 너는 나비라니. 사람도 싫고 인생도 싫고 그냥 모든 게 다 싫었던 때였다. 하루 종일 방 안 꽃무늬 벽지만 쳐다보며 아득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그것조차 지치는 날엔 다시 눈을 감고 모든 걸 차단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 때면 그마저도 악몽을 꾸곤 했다. 이대로 의식조차 사라졌으면 하고 기대해봤자 시간이 더디고 정신이 흐려질 뿐이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잘만 뛰는 게 무색할 만큼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엄마. 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면 좋겠어.” 세상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 감정이 있다면 먼지만큼은 생각도 아픈 감정을 느낄 가슴도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무리 그래도 딸이 엄마에게 할 소리는 정말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만큼 나는 나만 보였던 것이다. 먼지 타령을 하는 딸을 보면서 엄마는 얼마나 맥이 빠졌을까. 나는 아직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보지 못해 그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순 없다. 하지만 아마도 우리 엄마는 딸이 아픈 게 모두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 수많은 밤을 뒤척였을 것이다.
어느 날 먼지가 꿈이 된 딸에게 엄마는 너는 나비라고 했다. 나는 캄캄한 이불 안에서 트림을 하듯 울음소리를 끌끌 댔다. 내가 왜 나비일까? 나는 한 치 앞도 요원한 번데기 나부랭이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엄마는 계속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비는 원래 애벌레지. 고통 없이 나비가 되는 애벌레는 없잖아.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를 널 믿어.” 이어서 덧붙인 말엔 앞길이 막막해도 상처가 많은 번데기라도 봄바람이 불어오면 날개를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게 될 거라고도 했다. 그순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 같다고 생각했는데 유튜브에서 찾은 윤도현의 <나는 나비> 링크를 투척하고 엄마가 카톡방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와중에 흐리게 웃음이 났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나이팅게일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냥 간호사 말고 나이팅게일.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알게 된 나이팅게일처럼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백의의 천사가 꿈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매일 자식을 돌보는 일에 이렇게도 지극정성인 걸까? 이젠 자라다 못해 과년한 딸 둘과 덩치가 산만하게 장성한 아들 하나가 모인 카톡방은 여전히 엄마의 메시지로 바쁘게 울린다.
“엄마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말이야~ 엄마가 책에서 읽었는데 말이야~”로 시작하는 문자메시지는 한결같이 길고 긴 장문이다. 뭐가 그렇게 염려되는 것이 많고 자식들에게 해주고픈 얘기가 많은지 엄마는 늘 엄마가 어디서 뭘 봤는데 말이야~ 라는 말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정보를 시도 때도 없이 보냈다. 대부분이 자식의 몸과 마음 건강을 염려하는 말들이다.
때로는 회사에서 업무를 보다가. 모처럼 시간을 내서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도 심지어 오랜만에 엄마 집에 들러 밥을 먹을 때도 엄마는 “엄마가 말이야 어디서 뭘 봤는데 말이야.” 하며 건강 상식들을 쏟아내기 바쁘다. 되도록 인스턴트 음식 먹지 마라. 물을 많이 마셔라. 영양제는 이게 좋다더라. 의자에서 할 수 있는 생활 스트레칭을 알려주겠다며 종종걸음으로 나를 쫓아다닌다. 어떨 땐 그런 엄마가 귀찮아서 엄마 제발 좀. 이라고 말할라 치면 엄마는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더 의기양양해진다.
“본래 엄마는 잔소리를 하려고 태어난 몸이올시다~”그러고는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혼자 깔깔댄다. 그런 엄마를 거실 소파에 앉아 멀뚱히 쳐다보다가 지금이라도 간호조무사 자격증이라도 따라고 권유했다. 동네 병원이라도 취직해가지고 환자들한테 건강 염려 좀 해주라는 내게 엄마가 말한다. “간호사보다도 제 아무리 방구석 닥터라도 명색이 의사니깐 내 말 들어라?”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프라이팬에 멸치랑 꽈리고추를 들들 볶으면서 계속 웃는 엄마다. 나이팅게일보다 엄마가 더 천사 같다.
※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의 연재 글마다 엄마의 짧은 소감문이 하단에 실립니다.
- 딸이 쓴 글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엄마가 딸에게 화답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