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유 Oct 21. 2021

엄마, 모든 게 사랑 때문일 거야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 에필로그

<에필로그>


  근래에 계속 비가 왔다. 그래서인지 무심코 튼 텔레비전에서 내일은 날이 갤 것으로 예상된다는 앵커의 멘트가 그토록 반가웠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 손을 이끌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사계절에 맞춰 꽃을 피워내는 아파트 화단은 이렇다 하게 새로울 것도 없는데 엄마는 모든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 봄을 알리는 목련나무가 때 없이 가을 맡에 봉우리를 피워낸 것이다. 쟤는 왜 지금 봉우리가 나고 그러느냐며 심드렁한 나의 말에도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어머. 고와라. 환경 조건이 맞으면 봄이 아닐 때도 꽃이 핀다니깐~” 엄마 말처럼 아파트 화단 목련 나무엔 아가 솜털을 닮은 꽃봉오리가 오롯하게 달려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목련꽃이 싫다고 말했었다. 꽃이며 강아지며 생명이 있는 건 어여삐 봐주는 엄마가 싫어하는 꽃이 있었다니. 목련꽃은 왜 차별하냐는 딸의 물음에 죽음을 온전히 보여주는 숙명이라 싫다고 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짙게 떠오른다. 까만 얼굴로 흙바닥에 짓이겨진 꽃잎이 나무 밑에 가득한 모습만큼 안타까운 게 없다면서……. 지는 모습이 추하잖아. 나지막이 한마디를 덧붙이던 엄마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러고는 기어코 가을에 봉오리를 피어낸 목련은 예쁘단다. 무슨 모순일까 싶지만 어쩐지 엄마의 말이 이해 가는 건 왜일까.


  나는 엄마의 저물어가는 삶을 사랑하고 싶다. 퍼석하게 늙어가는 엄마의 뒤꿈치를 가만히 쓸어주고 싶다. 엄마와의 얘기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난 감정이 오로지 사랑으로 가득한 줄 알았는데 글을 쓰면서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따금씩 내 글을 읽던 엄마가 가슴이 시리다고 말하면 그런대로 썩 나쁘지 않은 감정이 들었으니. 내 글은 때때로 나 살면서 엄마한테 이만큼이나 서운했던 거 알아요? 하며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내 사랑이 고작 이 정도로 얄궂을 줄은 몰랐다.


  다른 모녀들도 이러고 사는 건지 우리 모녀가 유난히 탈이 많았던 건지는 알 수 없다. 살면서 풀기 힘들 만큼 단단히 꼬인 모녀 실타래의 매듭을 풀어가면서 엄마의 인생을 더듬어봤다. 그럴 때면 가슴이 한참 아려오곤 했다.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엄마 당신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노라고 글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세상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엄마가 밉다. 차올라서 넘치기엔 모자라고 한없이 모자라다고 단정 짓기엔 수면 위로 넘실대는 뜨거운 마음. 딱 그만큼이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일 것이다. 내가 아무리 따라잡으려고 해 봤자 나를 향한 엄마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더 클 순 없는 것이기에. 딸이 엄마를 넘어서기엔 엄마의 사랑이 한없다.


  제 아무리 목련 잎이 거무스름한 죽상을 하고 흙바닥에 흩어져있어도 고왔던 지난날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 엄마도 새초롬하게 곱고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시들어가도 저물어가도 엄마의 세월이 그대로 묻어난 주름진 얼굴은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엄마는 삼십 년이 넘도록 여전히 내가 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좋다. 이젠 잔소리 좀 그만하며 살자니깐 “딸. 네가 좋아서 그래~” 하는 엄마의 얼굴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모녀가 이토록 탈이 많았던 건 모두 사랑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너무 염려해서. 서로가 너무 소중하고 사랑해서.


  나는 그럴 수밖에 없던 엄마의 모든 말들을 행동을 삶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길 기다리고 있다. 그때가 오면 엄마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 마음이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유일하게 확할 수 있는 건 모든 애잔함이 엄마를 지나치게 사랑해서라는 거다. 엄마라는 꽃이 내 마음 안에서 사계절 내내 피어나니 이게 전부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엄마와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의 연재 글마다 엄마의 짧은 소감문이 하단에 실립니다

- 딸이 쓴 글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엄마가 딸에게 화답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혼자 탄 트럭 안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