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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Oct 21. 2021

엄마 혼자 탄 트럭 안에서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 ep.14

  울다가 허망해서 허공 보고 헛웃음 짓는 게 아니라 진짜 울면서 웃는 얼굴.  슬프게 꺼이꺼이 흐느끼면서도 환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게 말이 될까 싶겠지만 그날 엄마의 눈에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동시에 나를 향해 씩 웃고 있었다. 살면서 그 먹먹한 얼굴이 내 기억 상자에 꽁꽁 갇혀서 잊히지 않았다. 엄마는 서글픈 본인의 마음이 행여나 딸에게 짐스럽기라도 할까 봐 애써 웃어 보였던 것이다.


  살면서 인생이 지하 바닥을 뚫고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결혼을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지면 서다. 지금이야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여러 번 씻겨나가서 상처의 혈흔이 없어지고 폭삭한 모래알들이 차올랐지만 한동안 많이 아팠던 게 사실이었다그땐 어리기도 어렸고 벌려놓은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도 모르겠어서 정신이 반쯤은 쏙 빠진 사람으로 살았다. 나는 그럼에도 저지른 일은 스스로 처리해야 했으므로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걸고 콜택시를 불렀다. 


  바닥에 내팽개친 손가방을 들고 택시를 타러 나가려는데 엄마가 그런 나를 기어코 따라오겠다고 했다. 만약에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든 엄마를 떼어놓고 혼자 갔을 것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터라 책이 유난히 많은 편이었고 워낙 책을 좋아해서 따로 사 모은 책들도 꽤 됐다. 그 소중한 책들을 신혼집이 될 뻔한 곳으로 몽땅 옮겨놓은 상태였다. 책과 몇 벌의 옷가지들을 이삿짐 트럭에 싣고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와야 하는 그 상황이 죽을 만큼 싫었지만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그 많은 책을 모조리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차분히 택시에 올라탄 나와 다르게 엄마는 숨구멍이 닫힐 정도로 울었다. 나는 뒷좌석에서 우는 엄마를 애써 모른 체하며 '엄마와 함께 가게 되었으니 두어 시간, 길면 서너 시간 정도 자리를 비켜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문자 메시지에 적힌 비밀번호를 현관 번호 키에 대고 누르자 딸각 문이 열렸다. 나는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책들이 꽂힌 서재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챙겨간 빨간 노끈으로 책을 열심히 묶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옆에서 꿋꿋이 책을 함께 묶던 엄마가 노끈을 내동댕이치고 대성통곡을 했다.


   “그냥 이깟 놈의 책들 다 버리고 가자. 나중에 이 책들 몽땅 다 새로 사줄 테니깐 두고 가자고! 내가 속상해서 더는 여기 못 있겠다.” 꽁꽁 부여잡던 마지막 내 인내심이 그대로 무장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참던 눈물이 자꾸만 비어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는 울면서도 계속 짐을 싸고 있었다. "엄마. 아무래도 그 사람이랑 여러 가지 정리해야 할 서류도 있고. 여기저기 취소 전화도 해야 하고. 먼저 집으로 가세요." 나는 이삿짐 트럭에 짐과 함께 엄마를 먼저 실어 보냈다. 나중에 엄마 혼자 트럭에 태워 보낸 걸 두고두고 후회할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엄마와 함께 트럭에 몸을 실었을 텐데 말이다.



  통화나 문자로 처리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을 텐데 나는 뭐한다고 엄마를 그 외로운 트럭에 실어서 먼저 보냈을까. 한 번씩 기억이 떠오르면 그 순간을 많이 후회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그 트럭 안에서 많이 울었다고 운을 뗐다. “이런 경우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눈물 나면 저 신경 쓰지 말고 실컷 우셔도 돼요.” 하는 트럭 운전기사의 말에 참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는 엄마는 겸연쩍어하며 마른 수건을 갰다.


  나는 생각하기 싫은 일련의 순간들을 쇠줄에 구슬을 꿰듯 엮어가면서 오래도록 아파했다. 하지만 그 줄에 엄마의 순간은 없었다. 예컨대 엄마가 그 트럭 안에서 얼마만큼 쓸쓸함에 마음을 떨며 도로를 달렸을 지에 대한 것 말이다. 나는 그 후로 어떤 순간이 찾아온다해도 엄마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어떤 날은 집 주변을 산책하고 들어와 다시 침대에 누우려는데 벽지에 사진 한 장과 함께 접착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나와 네 살 터울의 여동생이 당시에 유행했던 털실로 짠 똑같은 베레모를 쓰고 뽀뽀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내가 일곱 살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메모지와 사진을 보고 한참을 숨죽여 울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거실로 나가 TV를 보고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었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찬물로 한참 세수를 하다가 세면대 거울을 쳐다봤는데 엄마가 내 뒤에서 나를 보면서 울고 있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왜 울고 그러느냐고 하자 엄마는 일그러진 얼굴로 울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냥~ 이제야 네가 보여서." 


  엄마는 어느 순간에도 딸의 마음이 다칠까 봐 편하게 울지도 못한다. 본인 마음보다 딸의 마음이 더 안중에 있는 사람. 나는 생전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어색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마주치기만 하면 눈을 바라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다. 엄마가 나 몰래 우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웃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사랑해요 하고 말한다. 이 글을 쓰고나니 느닷없이 오한이 와서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자 "딸~쌍화탕 한 병 마시고 푹 자." 하신다.  아무래도 이 글의 화답 글은 받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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