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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Jun 04. 2020

내가 묻고, 네가 답하던 시간들

- 자소서 쓰던 밤들-

나는 묻고, 그들은 답한다.

물음들을 찾기 위해 그들이 쌓아 올린 2년 반의 고등학교 생활들을 들춰본다. 궁금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처음 던지는 질문은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그래서 넌 뭘 하고 싶니?"

황당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나에게로 되돌린다면,

 "꼭 뭘 하고 싶어야 하나요?, 꼭 뭘 해야만 하는 건가요?  계획대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소심한 반격으로 상대에게 내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좁은 내 책상 옆자리에 앉아서 그들은 내 물음이 뭐 대단한 것 마냥 그 답을 찾기 위해 궁리를 하다 대답을 한다.

"경제학자나 경제정책연구원요"

"그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걸 해서 궁극적으로 넌 뭘 하고 싶어? "


 우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자신을 허구로 꾸며내고 그것을 자신인 양 받아들이게 하는 '자소설'이 그들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나아가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킨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거짓과 허위로 가득 찬 '자소설'을 써야만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아니 설령 이 말의 일부분이 현실과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함께 써나가던 그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묻고, 네가 대답하던 그 밤들을 나는 감히 '자신'에게 다가가는 밤들이었다고, 그리하여 가장 고달프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정한 몇 가지 자소서 작성의 원칙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생활기록부와 일기장, 사진을 보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연극반에서 대본을 썼다" -> "왜 썼지? 어떻게 썼지? 난 그때 뭐가 좋았을까? 뭐가 싫었지? "

2. 나 자신에게 정말 의미 있었던 활동,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는 것이 있으면 3개만 뽑아서 그걸로 쓴다.

3. 미사여구와 관용어구는 쓰지 않는다. 튀어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4. 쓰면서 정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 적이 있구나 싶어 울컥울컥 할 때까지 쓴다.(그러면 나는  합격한다.)

5. 더는 고칠 수 없다, 나는 충분히 이것으로 만족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제출하기' 버튼을 누른다.


2020년 새해가 밝았고,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군대와 학부과정을 마치고 바로 대학원 조교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2년 전 그때처럼 낮에 만나서 밥   먹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몸과 마음이  부대끼는   보내시라' 문자를 남겨놓았다. '몸과 마음이  부대끼는  '라니, 이제  이상 ' 아이' 아니다. 아무  없이 독하게, 무섭게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던, 그가 수년의 세월을 건너 나에게 이토록 다정한 문자를 남겨놓을지 그때는 정말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담임이었던  눈에 그는 그저 죽어라 공부만 하는,  매력 없는 우리  1등이었을 뿐이었다. 재밌고 톡톡 튀는 많은 아이들 속에서 그는 두꺼운 안경 뒤에 남아 성실하게, 성실하게 공부만 했다.   12시까지 학교에 남아 자습을 하는  마음을 그저 성취욕으로만 똘똘 뭉쳐진 돌덩이 같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다가오지 않고, 다가가지 않는  거리에서 우리는 3 담임과  1등의 관계로  있었다.  


운동장의 활기가 살짝 비껴나간 곳에서, 앵봉산을 등지고 그 아이가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그 길목에서 푸르른 뒷산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득하니 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거친 호흡을 뚫고, 내려앉은 그 아이의 외로운 마음이 건너왔다.


늦여름 밤이었다. 자습하는 그 아이를 처음 불러 내렸다. 딱딱한 성적 얘기 대신 그 마음을 에둘러 물었던 것 같다. 술술, 두루마리 화장지가 물에 녹아내리듯, 돌덩이 같을 것 그 마음이 시간을 타고, 그 밤의 공기를 타고 교무실에 흘러내렸다. 짝사랑의 쓸쓸함과 쉽게 꺼내놓을 수 없었던 아픈 상처와 그 상처를 둘러싼 갖은 이야기들을 그 아이가 꺼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 아이가 성실한 땀으로 새겨놓은 생활기록부의 내용을 하나하나 물었다. 왜 했니?  그래서?  왜? 넌 어땠어? 지겨울 법한 수많은 질문에 그 아이는 어눌하지만 분명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묻고 말하던 밤들이었다. '내가 묻고, 네가 답하던 그 밤'들이 여러 번 지나고, 수능을 보고,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다섯 번의 불합격을 마주했다.


 "선생님, 전 재수는 안 해요. 정시 원서 써서 갈게요. 괜찮아요, 선생님. 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여기서 더 할 순 없어요. 괜찮아요 선생님"  

수시 발표 마지막 날, 그해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 합격자 발표가 나던 오후 5시에는  눈이 내렸다. 그 아이는 합격을 했다.   


2024년 입시부터는 학종에서 자소서 제출이 폐지된다. 알고 있었지만, 오늘 대입 변화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자소서가 폐지된다는 것을 확인하니, 기진맥진할 때까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던 그 치열했던 순간들을 다시는 맞이할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자소서의 폐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소서를 쓰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내밀하게 들여다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섣불리 폐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이 달아 놓은 메모가 화면에 쫙 펼쳐지면 뭔가 있어 보여 좋아하던 시간들, 생활기록부를 들여다보며, '아, 그래도 열심히 했네' 이런 생각 들어 우쭐해하던 시간들, '추억팔이'하느라 공부는 좀 안 했지만 그래도 '내가 좀 멋진 놈 같이 느꼈지던 '시간들,  '뾰족뾰족 가시 위에 서 있는' 불안함과 쾌감이 공존하는 '묘한 경험'을 하는 시간들, 대학생처럼 노트북 켜고 자소서를 쓰면 '왠지 있어 보여' 좋았던 시간들"


이제 사라질 시간들이다. 내가 묻고, 네가 답하던 그 밤들이 있어, 나는 고3 담임으로서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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